한국전쟁 민간인 집단학살지인 대전 산내 골령골 진실 규명을 위한 과거사재단 설립 필요성이 제기됐다.
13일 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에 따르면 지난 11일 오후 파비앙 살비올리 유엔(UN) 인권이사회 진실·정의·배상재발방지특별보고관이 대전 동구 산내 골령골 유해발굴 현장을 찾았다. 이날 살비올리 특별보고관 방문 자리엔 유가족과 정근식 진실화해위원회위원장, 인권시민단체 관계자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살비올리 특별보고관의 이번 방한은 내년 9월 유엔 인권이사회에 보고될 보고서 작성을 위해 이뤄졌다. 유엔 특별보고관은 특정 국가 또는 주제에 관한 인권 상황을 조사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유엔에 권고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살비올리 보고관은 이날 2시간여에 걸쳐 골령골 민간인 희생사건에 대한 보고와 유해 발굴 현장 설명, 희생자 유가족과의 면담 등을 가졌다.
산내사건희생자 유족들은 국가 및 가해자의 사과와 발굴 유해에 대한 유전자 감식, 과거사재단 설립 등을 촉구했다.
전미경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장은 “골령골 학살 사건은 희생자들은 있는데 가해자는 나타나지 않는 이상한 사건이 됐다”며 “국가범죄에 대해 국가 차원의 진정한 사과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이 종료되더라도 인권 교육 등 후속 조치를 할 과거사재단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발굴된 유해들은 유전자 감식을 통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전 동구와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은 지난 7일부터 마지막 유해 발굴에 돌입했다. 정부는 올해 12월까지 골령골 유해발굴 사업을 마무리하고 2024년에 9만8601㎡ 규모로 산내 평화공원을 조성할 예정이다. 2020년부터 현재까지 모두 1250구의 유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살비올리 보고관은 한국의 과거사 사건에 대한 현황과 과제를 담은 보고서를 내년 9월 제 54차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보고서는 진실·정의·배상 및 재발 방지의 권리를 증진하기 위한 구체적인 국제기준과 권고를 수립하는 데 활용된다.
국내 13개 인권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유엔 진실정의 특별보고관 방한 대응 인권시민사회모임’은 “살비올리 특별보고관의 이번 방한을 통해 미진한 한국 사회의 과거사 청산 현황이 공식적으로 확인되고 향후 피해자 권리 보장을 바탕으로 진정한 과거사 청산을 위한 유의미한 권고가 내려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살비올리 보고관은 지난 9일부터 방한 일정을 이어오고 있다. 서울에서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와 면담하고 여순10·19 범국민연대와 만남을 시작으로 11일에는 대전 골령골 민간인 학살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살비올리 특별보고관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인권변호사이자 법학 교수로 2018년 5월 유엔 진실정의 특별보고관으로 임명됐다. 유엔 시민적 정치적 권리규약 위원회(자유권위원회) 위원을 역임했으며 2015년 한국 정부의 자유권 심의 당시 자유권위원회 의장직을 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