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에탄올 혼합률이 올라갈수록 연료 가격이 내려갑니다. 배기가스 배출량도 비례해 낮아지니 환경적이기도 하죠.”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인근 그런디 카운티의 채나혼에 위치한 손튼스(Thorntons) 주유소. ‘휘발유‘, ‘경유’, ‘고급 휘발유’ 등이 적힌 우리나라 주유 기계와 달리 다섯개의 노란색 버튼 안에는 ‘85’, ‘88’, ‘87’, ‘89’, ‘92’라는 숫자가 각각 적혀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미국 주유소·편의점 복합 브랜드인 손튼스의 빌리 존슨 지역 매니저는 “약 15만개에 달하는 미국 주유소 중 98%가 의무적으로 바이오에탄올을 휘발유에 섞은 연료를 판매하고 있다”며 “해당 숫자는 바이오에탄올 함유량과 옥탄가를 뜻하며 가격도 다르다”고 설명했다.
85는 E85로도 불리는데, 휘발유 15%에 바이오에탄올 85%가 섞였다는 의미다. 88은 바이오에탄올 함량 비율이 15%인 E15 제품으로, 88 자체는 옥탄가를 뜻한다. 10% 함유율의 E10 역시 옥탄가에 따라 87과 89, 92로 분류돼 팔린다.
미국은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기 위해 2005년부터 바이오에탄올을 최소 10% 이상 의무적으로 연료에 혼합하는 ‘바이오 연료 혼합의무제도’(RFS·Renewable Fuel Standard)를 시행 중이다. 덕분에 현재 미국 주유소에서 바이오에탄올이 첨가되지 않은 연료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흔히 친환경 에너지가 경제성이 떨어진다고 여겨지지만, 바이오에탄올은 가격 측면에서 강점을 지닌다는 게 존슨 매니저의 설명이다.
그는 쉐보레의 ‘임팔라’ 차량에 E85 연료로 주유하는 시범을 보이며 “바이오에탄올 비율이 높을수록 오히려 갤런당 가격은 내려간다”며 “미국 정부도 바이오에탄올을 인플레이션 관리에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기준 E85 연료는 1갤런당 4.72달러로, 임팔라에 가득 채웠을 때는 39.99달러로 나타났다. 다른 휘발유 제품과 비교해 가장 저렴했는데, E10 중 옥탄가 92의 무연 휘발유(Super Unleaded 92)는 1갤런당 5.82달러로 가장 비쌌다. E10 옥탄가 92의 무연 휘발유로 임팔라에 가득 주유했을 때는 49.31달러가 계기판에 표시됐다. 옥탄가는 휘발유가 연소할 때 이상폭발을 일으키지 않는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로, 높을수록 고급종으로 분류된다.
바이오에탄올의 이 같은 가격 경쟁력은 미국 내 인플레이션 억제에도 활용 중이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치솟는 기름값을 잡기 위해 E15의 여름 판매를 허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E15는 여름철에 사용하면 스모그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 탓에 6월1일∼9월15일 판매가 금지돼 왔다. 백악관은 현재 30여개 주의 2300여 주유소에서 E15가 판매 중이고, 이번 조치로 1갤런당 10센트가량 유가 상승 억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환경적 이점도 빼놓을 수 없다. 바이오에탄올은 옥수수나 사탕수수, 밀 등의 식물 원료를 발효시켜 만드는 탄소 중립 에너지이다. 주로 휘발유나 경유에 일정 비율을 섞어 사용하는데, 산소 함량이 적어 불완전 연소에 따른 일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휘발유와 달리 산소를 포함하는 만큼 불완전 연소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아르곤국립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바이오에탄올은 일반 휘발유보다 탄소 배출을 약 44~46% 감소시킬 수 있다.
이처럼 유해 물질의 배출 감소는 건강 증진과도 직결된다.
이날 만난 안젤라 틴 미국폐협회 부회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는데, 사람들의 활동량이 줄었음에도 대기 질은 호전되지 않았다”면서 “바이오에탄올 같은 친환경 에너지는 자동차로 인한 유해 물질을 줄여 대기 환경을 좋게 하고, 결국 사람의 건강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연비 하향 문제 등 기술적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도 남아있다. 바이오에탄올이 일정량 이상 혼합되면 물과 에탄올의 분리 현상이 발생해 연료로서 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게 문제다. 바이오에탄올의 연비가 휘발유보다 떨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에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 겸임교수는 “단위연료당 연비 1~2%는 미비한 차에 불과하다”며 “일상에서 이 정도 차이를 체감하기는 힘들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