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 치릴로. 2주 전 세상을 떠난 마흔 살의 젊은 가톨릭 사제입니다. 선종 당일 오전, 부산에 일정이 있다며 지팡이를 짚고 경기도 양주시의 사제관을 나서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몹시 아파 보였기에 동료 신부들이 강제로 병원에 데려갔습니다…그는 병원에 들어간 지 12시간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미 폐암 말기에다 온몸엔 암세포와 염증이 퍼져 있었습니다.”
2012년 11월 ‘중앙일보’에 실린 칼럼 ‘누구에게나 삶은 가볍지 않다’를 읽고서, 소설가 김훈은 젊은 신부 양종인 치릴로 신부가 세상에 다녀간 것을 알게 됐다. 양 신부의 친구를 통해서도 그의 삶을 조금 더 알게 됐다. 1972년 태어난 양 신부는 2000년 사제 서품을 받고 천주교 의정부교구에 배속된 뒤 사람들의 죽음을 보살피고 인도하는 상장례학교 교장으로 일하다가 마흔 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김훈은 작고한 양 신부 생애를 생각하면서 단편소설 ‘저만치 혼자서’(사진)를 써내려갔다. “죽음의 문턱 앞에 모여 서로 기대면서 두려워하고 또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표정을 겨우 썼다”(‘군말’)는 그의 말처럼, 소설에는 개별적 죽음 앞에서 그 개별성을 존중함으로써 비로소 개별성을 뛰어넘는 인간의 모습이 서늘하게 그려져 있다.
―표제작은 죽음을 무심하게 그려 인상적이었다. 김루시아 수녀를 비롯해 소설 속 죽음은 무엇일까.
“죽음은 인간의 이해의 영역을 벗어나는 사태다. 누구나 죽지만 누구도 죽음을 모른다. 내 소설에서 아무도 죽음을 설명하거나 극복하지는 못한다. 다만 서로 부축해서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다.”
―호스피스 수녀원이나 신부 및 수녀들의 디테일은 어떻게 확보했는지.
“나는 유아세례를 받은 천주교 신자이지만, 지금은 교회에서 멀어졌다. 작품 속의 디테일들은 내가 유년 시절에 보아온 것들이고, 또 천주교 성직자들에게 많은 것을 물어보았다. 디테일은 전체의 일부이다.”
소설집을 여는 ‘명태와 고래’는 역사와 시대의 수레바퀴에 깔려버린 어부 이춘개의 생애를 무심하게 담았다. 동해안 포구 어래진에서 태어난 그는 인근 남쪽 포구로 피신했다가 월남민 신세가 되고, 어느 날 다시 해류에 밀려 북쪽 고향 포구로 갔다가 인민군에게 붙잡혀 남쪽 포구 그림을 그려주고 풀려난다. 그는 자신이 그려준 그림 때문에 간첩으로 몰려 감옥에 갇히면서 삶은 파괴된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보고서를 읽고 소설을 구상했다는 그는 “제도화된 폭력은 그 야만행위를 자행하는 자와 피해자와 방관자들의 인간성을 심대하게 파괴했고 그 시대에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다”고 썼다.
―과거사위원회 보고서를 읽은 후 썼다고 했는데, 주인공 이춘개의 실제 모델이 있나.
“과거사위원회 보고서는 방대한 분량이다. 여기에는 비슷한 사례들이 거듭 반복되면서 구조화되고 제도화된 악행을 보여준다. 이 반복은 절망적이다. 이춘개의 실제 모델은 없고, 그 시대의 피해자 전체이다. 나는 그렇게 설정했다.”
―경찰은 이춘개의 사인을 추락사로 봤는데, 추락사가 아니라 극단적 선택을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언뜻 들었다.
“‘추락사’라는 사망 원인은 무내용하고 무책임하다. ‘추락사’는 ‘떨어졌기 때문에 죽었다’라는 말인데, 이 말은 사망의 원인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하고 있지 않다. 이 공허한 지껄임이 우리 시대의 언어의 한 특징이다.”
단편 ‘손’은 의료회사 매니저인 ‘나’가 경찰에서 군입대한 아들 철호가 또래의 여자아이 연옥을 강간해 죽게 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시작된다. ‘나’는 결국 피해자 연옥의 아버지를 만나러 길을 나서는데. 김훈은 2008년 부산 앞바다에서 조난당한 여자아이를 구하려 했던 “오영환 소방사에게서 들은 이야기의 느낌에 의지해서 쓴 글”이라고 했다.
―오영환 소방사가 알려온 시기는 언제였는지, 그때의 첫 느낌이나 감각은 어떤 것이었는지.
“오영환 소방사는 해운대 근무를 마친 시점에서 나에게 인명구조한 일을 말해줬다. 오영환 소방사의 말을 듣고 나서 인간의 ‘손’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서 썼다. 지금 봐도 서두른 흔적이 남아 있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소설집은 작가의 작품 세계에서 어떤 의미나 위치에 있는지.
“새로 나온 단편집에 묶은 소설들 속에서 주된 역할을 하는 인물들은 거의 늙어 있거나 삶에 지쳐 있다. 늙음을 좀 더 완성되고 편안한 모습으로 그려내지 못하고 이처럼 남루하게 되었으니, 슬프다.”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훈은 1994년 겨울 문예지 ‘문학동네’ 창간호와 1995년 봄호에 장편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을 2회 분재해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이후 장편소설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 ‘흑산’, ‘달 너머로 달리는 말’ 등을, 소설집 ‘강산무진’ 등을,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 등을 펴냈다.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특히 2001년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 ‘칼의 노래’는 큰 화제를 모으며 100만부 이상 팔리는 밀리언셀러가 됐고, 그에겐 그해 동인문학상을 안겼다.
―‘칼의 노래’와 관련된 알려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면.
“‘칼의 노래’를 쓸 때 나는 돈도 쌀도 없었다. 전라도 산골의 빈농가에 들어가서 썼다. 나는 지나간 일 중에서 자랑할 만한 것이 없고, 남에게 말할 만한 것이 없다. 나는 내가 쓴 모든 글을 거의 잊고 있다. 내일 아침에 쓸 문장을 생각하고 있다.”
―요즘 하루 일상은 어떠신지, 특별한 변화가 있는지.
“나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난다. 날마다 동네 숲속에 들어가서 두세 시간 앉아 있고, 운동도 한다. 사람은 되도록 피한다. 일은 조금만 한다. 억지로 해서 되는 일이 없다.”
김훈이 소설집에서 그리는 세계는 여전히 고통과 절망이 자욱했고, 그의 인터뷰 역시 희망을 꿈꾸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가 ‘나’가 아닌 ‘이웃’, 우리로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는 점 또한 분명해 보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표징을 김훈 문학의 어떤 구조 변화로 나아가는 우연으로 볼 수 있을까. 당신의 생각이나 의견은 무엇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