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Fed)의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 전망으로 투자심리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이 연일 요동치고 있다. 자이언트 스텝 현실화로 급격하게 금리가 인상되면 경기침체로 이어져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는 공포도 더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당분간 ‘베어마켓’(약세장)을 면치 못할 것이란 우려가 쏟아진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베어마켓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면서 저점 매수보다는 관망하는 게 적절하다고 조언했다.
연준이 14∼15일(현지시간)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자이언트 스텝에 나설 것이라는 예측은 점점 확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준이 6월 FOMC 회의에서 예상보다 큰 폭인 0.75%포인트 금리 인상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도 “이번 주 회의에서 1994년 이후 최대 금리 인상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한 건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 시절인 1994년 11월 이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준은 지난달 4일 22년 만에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단번에 0.5%포인트(빅스텝) 올려 0.75∼1%로 만들었다. 당시만 해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자이언트 스텝은 사실상 배제했지만 지난 주말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시장의 예상치를 웃돌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이날 발표된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5월 소비자 전망 설문조사에서는 향후 1년간 기대인플레이션율이 6.6%로 집계됐다. 이는 4월(6.3%)보다도 0.3%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2013년 6월 관련 조사가 시작된 이후 역대 최고치였던 3월과 같은 수치다.
FOMC가 6월 회의에서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경우, 한국도 추가 금리 인상이 불가피해진다. 한국은행은 “한·미 금리가 역전돼도 현재 상황을 볼 때 감내할 만한 수준”(이창용 총재)이라는 입장이지만,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달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1.50%→1.75%) 인상한 가운데 금통위원들이 추가 인상의 필요성에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이 14일 공개한 2022년 제10차 금통위(5월26일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 의사록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 참석한 금통위원 5명 전원이 기준금리의 추가 인상 필요성을 언급했다. 한 위원은 “최근 경제 상황의 흐름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물가상승 압력의 지속과 주요국 통화긴축 가속에 따른 불확실성 증대”라고 진단하며 “기대인플레이션 상승과 임금인상 요구 등을 통해 2차 파급효과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당분간 5%대의 높은 물가상승률이 지속하고 내년에도 물가안정목표를 크게 상회하는 물가경로가 전망되는 데다 미국과 주요국의 가파른 금리 인상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통화정책이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 복합위기 시작… 정책 수단 총동원”
전례 없는 복합위기로 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금융시장의 충격이 실물에 전이되지 않도록 제동을 거는 한편, 물가와 물류차질 등 실물경제상의 위험에 대한 대응도 서두르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4일 긴급 간부회의를 열고 국내외 금융·외환 시장에 대해 “한마디로 복합위기가 시작됐고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상황이 당분간 진정되지 않고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추 부총리는 “물가는 민생경제에 제일 중요한 부문인 만큼 모든 정책 수단을 물가 안정에 최우선을 두고, 관계부처와 함께 민생물가 안정을 위한 정책 수단을 총동원한다는 자세로 점검·발굴해 달라”고 당부했다. 추 부총리는 이날 오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비공개 회동을 갖고 금융시장 동향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기재부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방기선 기재부 1차관 주재로 비상경제대응태스크포스(TF)를 열고 이튿날 예정된 국고채 조기상환(바이백) 규모를 2조원에서 3조원으로 확대하는 등의 조치도 실시하기로 했다.
한은도 이날 오전 이승헌 부총재 주재로 ‘긴급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국제 금융시장 상황 변화가 국내 금융·외환 시장에 미칠 영향을 점검했다. 이 부총재는 “미국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앞둔 가운데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이틀 연속 금리가 큰 폭 상승하고 주가는 크게 하락했으며, 미국 달러화는 강세를 나타냈다”며 FOMC 회의를 전후로 국내 금융·외환 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금융당국 역시 이날 일제히 금융시장 변동에 대한 대응여력 점검에 나섰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금융시장 점검회의를 열고 “금융감독원, 국제금융센터 등과 비상 대응체계를 통해 국내외 금융시장 동향과 리스크 요인을 지속해서 모니터링하고 시장 불안에 대비한 시장 안정화 조치가 적시에 작동할 수 있도록 관련 대응 조치를 사전에 면밀히 점검해 필요할 때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개별 금융사의 건전성 및 유동성 문제가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확대되지 않도록 철저히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여당은 일단 치솟는 물가는 진정시키기 위해 석유류 가격에 붙는 유류세 인하 폭을 법정 최대 한도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이날 “정부는 유류세의 탄력세율을 최대한 높여 국민 부담을 줄여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유류세 인하 폭을 현재 30%에서 37%까지 늘려 가격을 낮추자는 뜻이다. 다만 정부로서는 ‘최후의 카드’에 해당하는 유류세 탄력세율을 조정하더라도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이어 가는 상황에서 기름값을 이전 수준으로 끌어내리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만만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