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 음악 세계 최정상 그룹 ‘방탄소년단’(BTS·사진)이 그룹 활동 잠정 중단으로 ‘챕터1 종료’를 선언했다. 음악에 담긴 메시지와 본보기가 되는 언행으로 만든 ‘선한 영향력’을 세계에 널리 퍼트린 BTS는 ‘성장과 성숙’을 위한 휴식, 그리고 솔로 활동으로 새로운 ‘챕터2’를 만들기 위해 이런 선택을 했다며 세계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이해를 부탁했다.
BTS는 지난 14일 오후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방탄티비’(BANGTANTV)의 ‘찐 방탄회식’ 영상에서 “우리가 잠깐 멈추고, 해이해지고, 쉬어도 앞으로의 더 많은 시간을 위해 나아가는 것”이라며 이 같은 결정을 설명했다. 리더 RM은 “돌려 말하지 않고 팩트를 말하자면 원래 (BTS의) 시즌1은 ‘ON’(2020)까지였다”며 “세상에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어 활동을 시작했는데 ‘ON’ 활동 이후 어떻게 할지 몰랐다”고 고백했다. 지민은 “이제서야 (각자의) 정체성을 가지려는 것 같고 그래서 좀 지치는 게 있는 게 아닐까 싶다”며, 슈가는 “가사가, 할 말이 나오지 않았다”며 “(언제부턴가) 억지로 쥐어짜내고 있었다. 지금은 진짜 할 말이 없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간 고민을 털어놨다.
◆아티스트 정체성과 K팝 시스템 충돌… 더 큰 성장위해 결단
세계 팝 무대 최정상을 질주하던 방탄소년단(BTS)이 더 큰 성장을 위해 스스로 멈추는 결단을 했다. ‘이제는 멈출 때’는 알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선택이다. 팬들을 생각하며 BTS는 눈물도 내비쳤지만 웃으면서 이 같은 결정을 한 이유를 설명하고 밝게 건배를 외쳤다.
BTS의 단체 활동 잠정 중단에 대해 정체성 혼란, 아이돌 그룹의 한계와 더불어 군입대 등의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BTS는 활동 중단을 선언한 지난 14일 유튜브 ‘방탄티비’(BANGTANTV) 채널 ‘찐 방탄회식’ 영상에서 그간 고충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특히 정체성 혼란으로 겪는 어려움의 정도는 상당한 듯했다. 리더 RM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떤 메시지를 던지느냐가 되게 중요하고 살아가는 의미인데, 그런 게 없어졌다”고 고백했다. 더불어 ‘K팝’과 ‘아이돌’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점도 이들에게는 고통이 됐다. 슈가는 “2013년부터 작업을 해 오면서 한 번도 ‘너무 재미있다’고 하면서 작업해 본 적이 없다”며 “그래도 지금 쥐어짜는 것과 7∼8년 전에 쥐어짜는 것과는 너무 다르다. 지금은 진짜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단체 활동을 중시했던 소속사 방침도 이들의 성장을 막았다. 개별 활동으로는 정식 음반이 아닌 ‘믹스테이프’(비정규 음반) 형태로만 선보여 왔다. RM은 “BTS 개개인이 누가 있는지는 (대중이) 잘 모르니까, 우리는 가수이니 음악과 퍼포먼스로 이야기하는 게 가장 임팩트가 있을 것 같다”며 개인 활동 필요성을 강조했다.
‘군입대’라는 피할 수 없는 의무도 BTS 활동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했다. 국위선양을 인정해 주는 특례가 필요하다는 논의도 불붙었지만 현실적으로는 당장 내년부터 그룹 활동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불확실성 때문에 BTS는 해외 투어 콘서트 등의 올해 하반기 일정부터 계획해 놓지 않았다.
다만 그룹 해체는 아니다. 박지원 하이브 대표는 15일 직원들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 “지속적인 성장, 성숙을 위해 팀 활동과 개인활동을 병행함으로써 활동의 폭을 보다 다각적으로 넓혀나가겠다는 것”이라며 “BTS는 팀 해체를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으며, 팀 해체의 수순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도 없다”고 못박았다.
박 대표는 “멤버 별 개인 활동 계획이 이미 수립되었거나 수립 중에 있고 곧 발표될 예정이며, 개인 활동과 팀 활동은 상호 시너지 하에 진행될 것”이라며 “팀 활동의 경우 이미 프루프 앨범 활동이 본격적으로 진행 중이고, 이후 추가적인 팀 활동 계획 또한 수립 중에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방탄소년단은 과거에도 주기적으로 장기적인 휴식기를 가진 적 있으며, 이번 개인활동 병행을 통해 멤버 별로 필요한 휴식, 작업시간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BTS의 이 같은 행보는 세계 팝 역사에서도 전례를 찾기 힘든 파격적 선택이다. 그 파장 면에선 비틀스에 비견될 만하다. 이제는 전설이 된 영국 그룹 비틀스는 1962년에 데뷔한 후 8년 만에 해체했다. 인기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생긴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 등 멤버 간 갈등과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BTS는 멤버들 사이가 여전히 돈독한 데다 해체가 아닌 잠정 중단이어서 내용 면에선 전혀 다르다.
국내 가요 역사에선 ‘서태지와 아이들’ 사례와 대비된다. 1991년 9월에 1집 ‘난 알아요’로 데뷔한 이들은 이후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통해 1990년대 초반 가요계에 혁명과 같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들은 1996년 1월31일 성균관 유림회관 기자회견장에서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보여 주었다”라는 선언과 함께 팀을 해체했다. 역시 아예 해체한 점은 다르나 “지금은 (음악적으로) 진짜 할 말이 없다”고 음악적 한계를 언급한 점은 BTS와 비슷하다.
◆K팝 세계 중심에 세운 9년… 매순간이 새역사
“두 유 노 K팝?(Do you know K-POP?)”
2014년 미국 할리우드 한복판 길거리에서 직접 만든 전단지를 나눠 주며 스스로 이름을 알려야 했던 ‘방탄소년단’(BTS)이 그 후 걸어온 길은 경이롭다. 데뷔는 2013년 6월13일 싱글앨범 ‘투 쿨 포 스쿨’. 이후 ‘스쿨’ ‘화양연화’ ‘윙스’ ‘러브 유어셀프’ ‘맵 오브 더 솔’ 등을 통해 음악적 세계관을 넓히며 다양한 메시지로 세상과 소통했다.
특히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했는데 이는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한 열정적이고도 응집력 높은 팬덤(아미)을 결성하는 데 일조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팬덤은 BTS가 해외, 특히 영미권 국가에 이름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그 결과 2017년 5월21일 열린 ‘빌보드 뮤직 어워드’(BBMA)에서 팬덤 활동이 가장 크게 작용하는 ‘톱 소셜 아티스트’를 차지했다. K팝 그룹 최초다. 이후 BTS는 해당 상이 폐지되기 전인 지난해까지 5년 연속 독점했다.
탄탄한 팬덤은 계속 늘어났고 이를 기반으로 BTS는 많은 기록을 세웠다. 2017년 11월20일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A) K팝 그룹 최초 공연, 2018년 5월28일 아시아 가수 최초로 빌보드 앨범 차트 ‘빌보드 200’ 정상 차지 등 이전까진 상상할 수 없던 무대를 열고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한국 가요 역사의 새로운 장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 팝 음악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병한 2020년부터는 BTS 천하가 열렸다. 그해 1월26일 ‘그래미 어워즈’에서 K팝 그룹 최초로 공연을 펼쳤으며, 9월1일 빌보드 싱글 차트 ‘핫 100’에서 K팝 가수 최초로 1위를 기록했다. 이후 BTS는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인 ‘핫 100’에서 16번의 정상을 차지했다. 지난해 11월22일 AMA에서 대상에 해당하는 ‘아티스트 오브 더 이어’를 수상하는 등 미국 3대 시상식 중 2곳에서 상을 받았다. ‘그래미 어워즈’에서는 2년 연속 노미네이트됐다. 이들의 행보는 대중음악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2018년과 2020년, 2021년 총 세 차례 유엔 총회에서 연설했으며, 지난달 31일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 초청으로 백악관에 방문했다.
◆“세계 아미들 충격… BTS 결정은 응원” 주요외신들 속보 잇따라
방탄소년단(BTS)의 활동중단 발표가 15일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아미(BTS 팬)를 충격에 빠트렸다. 미국 CNN, 일본 NHK 등도 주요 뉴스로 다뤘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BTS를 영국의 비틀스와 비교하면서 “한국의 보이 밴드 BTS가 데뷔 9주년을 기념하며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며 “BTS는 2013년 등장 이후 영향력 그 자체였다”고 보도했다.
대중음악 전문매체 빌보드는 “BTS의 활동중단 발표 후에 팬들은 트위터에서 ‘ARMYFOREVER’(아미 포에버)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면서 “많은 팬은 계속해서 BTS의 팬이고 그룹의 컴백을 참을성 있게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CBS뉴스는 “전 세계 아미가 이번 발표에 경악했다”며 “트위터는 BTS 팬들의 감성적인 글들로 가득 찼다. 전반적으로 팬들은 지지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중국에서는 BTS 멤버의 솔로 활동에 대한 기대감을 표한 팬도 많았다. 한 네티즌은 “BTS가 새로운 장을 연다. 쉼 없이 달리고 열심히 일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빛날 BTS 포에버”라고 응원 메시지를 남겼다.
일본 최대 일간지인 요미우리신문은 BTS의 활동중단에 대해 “개인 활동을 인정하지 않는 소속사 방침, 군입대 문제가 (이런 결정에) 영향을 주었다는 견해도 있다”고 분석했다.
유럽과 중남미, 동남아에서도 아쉬움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포스트는 최근 BTS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 회동을 거론하며 “BTS는 최근 수년간 미국 내 아시아계에 대한 폭력 문제가 대두하는 상황에서 인종차별에 싸우는 메시지를 전해 왔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