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적폐청산’이냐 ‘정치 보복’이냐… 신·구 갈등 격화

서해 공무원 사건·블랙리스트 등
前 정권 인사 연루 의혹 정조준
민주당 “정치 보복” 강력 반발

與, 서해공무원 靑 개입 의혹 제기
“내로남불 넘어선 북로남불” 비판
野 “與도 ‘월북이네’ 했었다” 반박

文정부 정보공개 소송사례 조사에
김정숙 여사 옷값 공개 여부 주목
탈북민 잇단 북송도 재조명 관심

‘신적폐청산’이냐 ‘정치 보복’이냐.

윤석열정부가 “자진 월북을 인정할 근거가 없다”며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의 경위를 뒤집고 감사에 착수하자 더불어민주당이 “정치 보복”에 이어 “신(新)색깔론”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여권이 당시 숨진 공무원 이모씨를 월북으로 단정한 배경에 ‘문재인 청와대’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야당은 “여당 의원들도 다 보고 ‘월북이네’ 이렇게 이야기했다”며 정치 공세라고 반박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상적인 시스템을 정치 논쟁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치 보복’이라는 확대해석에는 선을 그었지만 문재인정부에서 임명한 권익위원장·방송통신위원장 거취에 대해 압박하고, ‘산업부 블랙리스트’ ‘여성가족부 공약 개발’ 등 야당과 전 정권 핵심 인사들이 연루된 의혹을 검찰이 정조준하면서 사실상 ‘신적폐청산’이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은 “국가의 정상 시스템으로 풀 문제”라면서 절차에 따라 드러난 문제를 바로잡겠다는 방침이지만 문재인정부에서 이뤄진 정보공개 소송 대응 사례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아내인 김정숙 여사의 옷값을 비롯한 의전비용과 기타 특수활동비 공개 여부를 주시하고 있다. 특히 탈북과 송환이 반복됐던 2019년 탈북 선원 강제 북송과 삼척항 목선 귀순 등 안보를 이유로 정보 접근이 차단됐던 사건에 대한 재조사가 이뤄질지도 주목된다.

 

민주당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19일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월북 공작’으로 규정, 쟁점화에 나선 국민의힘을 향해 “민생보다는 친북 이미지, 북한에 굴복했다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신(新)색깔론”이라고 역공을 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이 19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기 위해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다. 허정호 선임기자

우 위원장은 해양경찰청과 국방부가 지난 16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씨의) 월북 의도를 못 찾았다”고 입장을 번복한 것에 대해 “관련 첩보 당국이 이런 첩보를 안 주는데, 월북이라고 하라 이렇게 지시한 적 없다”며 “대한민국 첩보 당국이 특정 정권 입맛에 가공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우 위원장은 논란이 된 월북 결론을 내린 후 해경의 ‘자진 월북’ 발표와 문재인 청와대 안보실이 결론을 바꾸라고 지시했다는 의혹에 대해 “지금 여당 의원들도 다 보고 ‘월북이네’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며 “제가 그걸 다 알고 있다. 어떻게 이런 내용을 정쟁의 내용으로 만드느냐”고 항변했다.

 

그러나 국민의힘 소속 정보위원회 간사를 맡았던 하태경 의원은 지난 17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해경 간부가 정권이 바뀌기 전에 저를 찾아와 양심선언을 했다. ‘수사하기 전에 이미 월북 결론이 나 있었다’고 했다”고 폭로했다. 월북 결론을 내놓고 짜깁기 수사를 했다는 의미다. 우 위원장은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된 관련 기록물 공개(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동의)를 위해 야당이 동의해야 한다는 여당 주장에 대해 “실소를 금할 수 없다”며 “문재인정부를 공격하기 위해서라면 북한을 감시하고 정보를 꺼내는 모든 첩보 기능과 대북 감시 기능을 다 무력화하겠다는 얘기냐”라고 거부 의사를 밝혔다.

 

윤 대통령 측은 야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략이 아니라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의 유족 명예회복과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겠다는 논리다. 국가안보실이 아니라 국방부와 해경을 통해 수사 결과를 밝히고 감사원이 곧바로 감사에 착수한 것은 행정력과 사법 시스템을 통해 사실관계를 밝힐 수 있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안보실은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된 ‘문재인 청와대’ 기록은 열람하지 못했지만, 해경이 가진 수사 자료와 관련자들의 증언, 국방부에서 보유한 감찰 자산 등을 통해 확인한 기록 등으로 사건의 경위를 충분하게 파악한 뒤 ‘월북을 단정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관련 근거 대부분을 외부에 공개할 수 없는 점, ‘월북이 아니다’라고 단정할 경우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NLL) 대화록 논란처럼 사실관계가 아닌 정쟁만 남을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절차를 밟아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이씨의 유가족 측이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상대로 공무집행방해죄와 직무유기죄 등의 혐의로 고소도 검토하면서 수사를 통해 사실관계가 드러날 가능성도 있다. 국민의힘도 공세에 가세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내로남불을 넘어 북로남불”이라며 비판했고, 허은하 수석 대변인은 논평에서 “한 국민의 억울한 죽음이 ‘월북자’라는 이름으로 왜곡됐고 진실은 은폐됐다”며 진상 규명과 자료 공개를 촉구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계기로 2019년 탈북 선원의 강제 북송, 삼척항 목선 귀순 사건 등 문재인정부에서 유독 빈번하게 반복된 탈북주민의 북송 결정 과정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나온다. 문재인정부는 2019년 11월 목선을 타고 귀순한 탈북주민 2명이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탈북한 흉악범이라는 이유로 강제 북송을 결정했다. 앞서 2019년 6월에는 강원 삼척시의 삼척항을 통해 목선을 타고 귀순한 탈북주민 4명 중 2명은 귀순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북한으로 돌려보냈다. 당시 야당이던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가짜 귀순’ 의혹을 제기하며 국정조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대통령실이 문재인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정보공개청구 소송 현황 조사에 착수하면서 청와대 특활비 지출 내역, 김 여사의 의상 포함한 의전비용 등이 공개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문재인 청와대’는 해당 내용을 공개하라며 제기된 시민단체와의 정보공개청구 소송에서 지난 2월 일부 패소했지만 항소했다. 이 때문에 관련 내용은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되면서 현재 공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통령실 측은 해당 사건의 항소 취하 여부를 포함해 정보공개청구 소송 관련 내용을 살펴본다는 입장이다.

 

다만 행정부의 전임 정부 결정 뒤집기와 사정 당국의 전 정권 핵심을 겨냥한 수사가 동시에 이뤄지면서 ‘신적폐청산’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점은 윤 대통령으로서도 일부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시스템을 통해서 할 일”이라며 “정치적인 계산으로 풀어 가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권에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도 법에 따라, 시스템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며 법과 원칙에 따른 절차를 강조한 바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여야 원 구성이 완료되는 다음 달부터 사실상 정권의 허니문이 끝나고 여의도 정치가 시작될 것”이라며 “거대 야당을 상대로 한 협치와 법·원칙에 따른 절차를 분리하는 윤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상 협치를 통한 입법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