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컨디션 난조로 병원에 갔더니 여러 곳에서 위험신호가 감지되었다. 그동안 몸 여기저기서 힘들다고, 그러니 쉬라고, 여러 통증과 불편함으로 사인을 보내왔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고용량의 영양제나 피로회복제로 달래며 무시해 왔었다. 의사의 처방은 휴식과 함께 무조건 운동이었다. 그 처방과 경고대로 얼마 전부터 아파트 둘레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파트가 산자락 밑에 위치해 있어 숲과 그늘이 좋았고 그만큼 산책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흑림을 이룬 나무 밑을 걷다보면 몸만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안정이 되었다.
그 숲 그늘로 들어가는 초입에 음식점들이 있었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자리가 다 찰 만큼 꽤 장사도 잘됐다. 그날도 빈자리가 없었다. 누군가는 불콰한 얼굴로 불판 위의 고기를 뒤집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진지한 표정으로 동석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다들 생의 한 순간을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한데 그 앞을 지나가려는데 어디선가 다급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안 돼. 식사하시는데 먼지 날리잖아!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대여섯 살로 보이는 아이들 세 명이서 흙놀이를 하고 있었다. 한 아이가 한 움큼 집은 흙을 바람에 날리는데 그 흙가루가 음식점의 식탁 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제법 거리가 있어 그곳에까지 닿을까 싶었지만 아이들의 아버지임 직한 사람이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고 있었다. 제지하지 않았더라면 아이들은 주변에 있는 흙을 더 끌어와 바람에 날리며 놀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