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N번방’ 사건이 세상에 드러났다. 아동·청소년을 가리지 않고 여성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잔혹한 범죄 행각에 한국 사회는 충격에 휩싸였다. 눈에 보이는 성범죄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던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계기였다. 시간이 흘러 N번방 사건의 가해자들이 죗값을 치르고 있지만, 피해자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우리 사회는 과연 디지털성범죄를 예방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준비가 됐을까.
이효정 서울디지털성범죄 안심지원센터장은 이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센터장은 21일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각을 전환해야 한다. ‘어떻게 행동을 했길래’라는 시선은 피해자를 세상과 더 멀어지게 한다”며 “이런 분위기 속에서 디지털성범죄가 공고해지고 확산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진다”고 진단했다. 디지털성범죄에 맞서기 위해선 피해자의 신속한 신고와 대응이 중요한데, 우리 사회가 오히려 이를 방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해자 검거는 피해자의 심리적 안정은 물론, 추가 성착취물 유포를 막기 위해서라도 중요한 요소다. 이 센터장은 가해자 검거를 위해선 초기 피해 단계에서 채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센터장은 “피해를 인지했을 때 그 상황이 두려워 카카오톡 채팅방을 나가거나 SNS를 탈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나중에 성착취물을 찾아 삭제하기 어렵고 가해자 검거를 위한 채증도 힘들어진다”며 “피해 즉시 안심지원센터에 연락을 해 주셔야 체계적인 대응이 가능하다”고 당부했다.
디지털성범죄의 형태는 날로 진화하고 있다. 사후 대응 위주의 대처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센터장은 디지털성범죄 근절을 위해선 가장 원론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가해와 피해 모두를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센터장은 “디지털 발달 속도에 비해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디지털성범죄 관련 교육은 매우 부족했다. 디지털성범죄가 무엇인지, 어떤 게 불법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아동은 물론 청소년, 부모, 교사를 대상으로도 올바른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에게 꼭 하고 싶은 말 한마디를 이 센터장에게 청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간절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에요. 정말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저희와 같이 대처하면 됩니다. 지금 안심지원센터로 연락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