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석 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이 북한군에 의해 자행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의 시신 소각에 대한 국방부의 입장 번복을 지시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민의힘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사건 진상조사 태스크포스(TF)’는 23일 국방부를 찾아 관련 내용을 보고받은 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이씨가 생존했다는 서면보고를 받고도 구출 지시를 하지 않은 점과 감청 자료 중 ‘월북’이라는 단어는 단 한 차례 언급됐다는 내용을 발표하며 ‘자진 월북을 단정할 수 없다’는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의 판단에 힘을 보탰다.
대통령실도 문 전 대통령이 과거 남북 군사통신선이 막혀 북한과 원활한 소통이 어려웠다는 취지의 발언에 대해 “군사통신선이 막혔다는 것은 핑계”라고 반박하며 문재인정부의 ‘자진 월북’ 판단과 이씨 발견 후 사살 전까지 대응 경위에 대한 의구심을 키웠다.
하 의원은 서 전 처장이 국방부의 시신 소각 ‘확인’ 판단을 ‘추정’으로 바꿨다고 주장했다. 그는 “2020년 9월 27일 서 전 처장 지시로 국방부에 공문 지침서를 보내 시신 소각으로 확정한 입장을 바꾸라 했다”며 “청와대에서 왜곡을 지시한 책임자가 서 전 처장”이라고 말했다.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은 같은 해 9월 24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시신을 불태우는 불빛이 40분 동안 보였다”고 했지만 한 달 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추정 사실을 단언적으로 표현해서 심려를 끼쳤다”고 밝혀 ‘말 바꾸기’ 논란을 초래했다. 하 의원은 또 ‘자진 월북’의 근거가 되는 7시간 분량 감청 자료에서 ‘월북’ 단어가 한 번밖에 등장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공개하고 “북한군 상부와 현장 보고 과정에서 딱 한 문장 나오는 거로 월북이라는 무리한 결론을 내렸다”고 성토했다.
국방부가 TF보고 방식을 통해 민감한 특수정보(SI)는 직접 공개하지 않으면서도 문재인정부의 ‘자진 월북’ 판단의 근거를 뒤집으면서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진상을 둘러싼 신구 권력의 충돌 수위도 높아질 전망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이날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문 전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번 사건에서 가장 아쉽게 부각되는 것이 남북의 군사통신선이 막혀 있는 현실이다”며 남북 소통 문제를 피살사건의 원인으로 언급한 것에 대해 “의사 표시도 안 했는데 군사통신선이 막혔다는 것은 핑계”라며 “통신선은 여러 개가 있다. 교신하려고 했으면 얼마든지 가능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반면, 서 전 처장은 이날 연합뉴스에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시신 소각에서 소각 추정으로 바꾸라는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편 이씨 유족의 법률대리인 김기윤 변호사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대통령기록관으로부터 “귀하(유족)의 정보공개 청구에 따를 수 없음을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과 같은 법 시행령에 따라 통지한다”고 통지문을 받은 사실을 공개했다.
앞서 서울행정법원은 이씨의 유가족이 제기한 정보공개 청구 소송에 대해 지난해 11월 북한군 대화를 감청한 녹음파일 및 북한과 국방부 산하기관의 통신내용을 제외한 상당 부분에 대해 공개를 결정했다. 대통령실이 최근 문재인정부 청와대가 낸 항소를 취하하면서 해당 판결이 확정됐지만, 관련 기록 대부분이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돼 사실상 15년간 봉인된 상태다.
김 변호사는 “문 전 대통령이 퇴임하며 유족이 승소한 정보와 그 목록까지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한 점이 확인됐다”며 “유족의 알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한 것이고 뭔가를 감추고 있다고 사료돼, 행정소송 등 법적 조치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씨의 형 이래진씨도 이날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문 전 대통령을 고발하고 추가 조사를 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유족 측은 오는 27일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를 만나 국회에서 대통령지정기록물 공개를 위해 의결해 달라고 건의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