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작품을 리메이크한다는 것은 엄청난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지난 24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은 어땠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계적 인기를 모았던 원작, 넷플릭스 ‘종이의 집’의 후광 효과와 K콘텐츠에 대한 기대감으로 좋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매력 있는 원작 스토리에 분단국가라는 우리나라 특수상황을 입혀 시청자 눈길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문화적 배경이 새로워진 것 외에는 사실상 원작 ‘복사판’인 데다, 그마저도 부실한 연출력으로 캐릭터들 매력이나 서사의 설득력을 반감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범행무대는 마드리드에서 옛 판문점 인근에 건설된 남북 공동경제구역(JEA) 내 조폐국으로 옮겨왔다. 남과 북, 두 체제가 혼재하고 남북한 사람이 뒤섞여 있는 설정만으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들이 생겨난다. 인질들을 출신에 따라 나누어 서로 감시하게 하는 장면이나 범죄 진압을 위해 갈등을 빚는 한국 경찰과 북한군 특수작전대 모습 등 오랜시간 적국으로 대립해온 남과 북의 해묵은 감정은 새로운 갈등의 한 축으로 작용한다.
스페인 강도단이 자유를 상징하는 달리 마스크를 썼다면 JEA 강도단은 안동 하회탈을 쓴다. 총성이 오가는 범죄 현장과 인자한 웃음을 띤 하회탈이 대비되며 기괴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강도단 행동대장 베를린 역을 맡은 박해수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권력층에 대한 비판이라는 풍자의 의미가 있는 하회탈이 작품의 ‘신의 한 수’”라며 “처음 탈을 가져와서 배우들이 썼을 때 위압감마저 들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남북 공동 화폐에 그려진 유관순 열사와 안중근 의사의 초상, 조폐국의 전통 한옥 지붕, 꽹과리와 징이 어우러진 배경음악 등 한국적 색채가 강한 소재와 장치들이 눈길을 끈다.
◆‘한국판’과 ‘복사판’ 사이
한국판 ‘종이의 집’은 공개 하루 만에 우리나라를 포함한 5개국에서 1위를 기록하며, 단숨에 글로벌 순위 3위(플릭스패트롤 기준)로 올랐다.
원작의 명성과 K콘텐츠의 높은 인기로 시청자들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작 평가는 엇갈린다. 큰 부분의 변화에만 치중해 정교하고 섬세한 변주에는 실패한 탓이다. 남북한으로 무대를 옮긴 것 외에는 원작을 복사한 듯한 스토리로 신선함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원작을 그대로 따라가려 하면서도 남북한 배경 설정에 너무 힘을 주다 보니 원작 서사에 설득력을 더하는 요소들을 정작 놓쳐버렸다.
무엇보다 개성 넘치는 원작 캐릭터들의 매력을 잘 살리지 못했다. 캐릭터들이 전반적으로 전형화되면서 존재감을 잃은 탓이다. 제각기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모든 것을 걸고, 복잡한 심경으로 인질극을 벌이는 상황이지만 한국판 인물은 다소 평면적으로 그려지며, 극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 ‘연기파’ 배우들을 모아놓고도 밋밋한 연출로 연기마저 어색하게 만들었다는 평이다. 특히 검색대를 통과하는 나이로비의 성적인 모습이나 지나친 성관계 묘사, 미성년자 노출신이 거슬린다. 등장인물에 대한 스토리라인과 캐릭터에 대한 세부적 분석이 부족하다 보니 자극만 남았다. 시즌1에서 전반부에 해당하는 6편이 공개됐으며 후반부 6편은 올 하반기 공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