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개명했지만… 미국은 여전히 ‘터키’ 고수

튀르키예 "핀란드·스웨덴 나토 가입 지지"
바이든·백악관, 축하 성명에서 ‘터키’ 표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튀르키예는 핀란드·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3국간 합의 성사 직후 SNS에 올린 축하 글. 튀르키예 대신 기존 명칭 ‘터키’(빨간줄)를 고수한 점이 눈에 띈다. SNS 캡처

터키(Turkey)가 영어로 표기하는 자국 국호를 ‘튀르키예’(Turkiye)로 바꾸고 최근 유엔이 이를 공식 승인한 가운데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도 속속 튀르키예 표기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다만 영어권을 대표하는 국가인 미국, 영국 등은 아직 기존의 ‘터키’ 표현을 고수해 튀르키예 정부의 애를 태우는 모습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레제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스웨덴 총리,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의 4자회동에서 ‘핀란드·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튀르키예가 지지한다’는 결론이 도출된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를 축하하는 글을 올렸다. 이번 회동은 나토의 중재로 이뤄졌으며 튀르키예·핀란드·스웨덴 3국 간에 양해각서가 체결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SNS 글에서 ”핀란드, 스웨덴, 그리고 터키의 3자 양해각서 서명을 축하한다”며 “핀란드·스웨덴이 나토 가입으로 가는 여정에서 결정적 진전을 이룬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핀란드·스웨덴의 합류는 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우리 집단안보 체제를 한층 굳건하게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터키’라는 기존 명칭을 고수한 것이다. 백악관도 바이든 대통령 명의로 공식 축하 성명을 발표했으나 본문은 물론 제목에도 ‘터키’라는 표현을 썼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역시 3국의 협상 타결을 축하하는 짤막한 논평을 냈는데 그는 핀란드·스웨덴의 나토 가입 절차가 중대한 고비를 넘긴 것에 축하의 뜻을 밝혔을 뿐 ‘튀르키예’는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튀르키예가 핀란드·스웨덴의 나토 가입에 반대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미국, 영국 주요 언론들은 거의 대부분 ‘튀르키예’ 대신 ‘터키’라고 표기했다. 튀르키예 정부 입장에선 자국의 바뀐 새 명칭을 널리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영어권 국가 및 언론의 ‘비협조’ 때문에 그만 날려버린 셈이 됐다.

 

지난 28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튀르키예는 핀란드·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3국간 합의 성사 직후 레제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왼쪽)과 3국 협상을 중재한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마드리드=AP연합뉴스

한국의 경우 외국 국호나 지명은 대체로 그 나라 현지 발음을 존중하자는 입장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우크라이나 측 요청을 받아들여 그 나라 수도 이름을 기존의 ‘키예프’(러시아어)에서 ‘키이우’(우크라이나어)로 변경한 것이 대표적이다. 우리 정부와 언론은 튀르키예 정부의 요구도 수용해 지난 24일부터 기존의 ‘터키’ 명칭을 버리고 튀르키예로 쓰고 있다.

 

하지만 미국, 영국 등은 외국 국호나 지명을 적을 때 그 나라 현지 발음보다는 영어식 표기법을 고수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탈리아’(Italia) 대신 이탤리(Italy), ‘에스파냐’(Espana) 대신 스페인(Spain), ‘벨기에’(Belgie) 대신 벨지움(Belgium)으로 각각 부르는 것이 그렇다.

 

때로는 정치적 이유 때문에 새로운 국호 또는 지명 사용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또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미얀마(Myanmar)가 대표적이다. 지금의 이름으로 바꾼 건 군사정권 시절인 1988년의 일이고 그 전에는 ‘버마’(Burma)로 불렸다. 미국, 영국은 미얀마란 명칭을 거부한 채 지금도 ‘버마’ 표기를 고집하는데, 여기에는 ‘군부독재를 인정할 수 없는 만큼 군부에 의해 임의로 개칭된 국호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의미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