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대통령도 이준석 ‘손절’ 나섰나…고립된 집권여당 대표

박성민 당 대표 비서실장 “더이상 할 수 있는 역할 없다” 사임
윤리위 징계 심의 1주일 앞두고 친윤그룹의 ‘고립작전’ 해석도
이준석 “비서실장에게 상황설명 들어…사퇴 받아들이겠다 해”
박지원 “사형선고를 받고 죽는 것보다 자기 스스로 물러나야”
‘성상납 의혹’ 기업 대표 “이준석 ‘박근혜와 만남 돕겠다’ 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30일 경북 경주 월성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을 방문하기에 앞서 월성원전 홍보관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상납 및 증거인멸 교사 의혹’으로 당 윤리위원회 징계 심의를 1주일 앞둔 국민의힘 이준석 당 대표가 사면초가의 위기를 맞은 모습이다. 이 대표는 연일 친윤(친윤석열)계의 견제와 압박을 받아왔고, 이어 비서실장마저 30일 갑작스럽게 사임하면서 윤석열 대통령까지 이 대표를 ‘손절’했다는 해석까지 나온다. 친윤계로 분류되는 박성민 당대표 비서실장은 이 대표와 대통령 사이 ‘연결고리’라는 상징성을 지닌 인물이기 때문이다.

 

◆‘윤심’ 이준석 떠났나…대통령실도 거리 두는 모습 

 

박 실장은 이날 언론에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오늘 저는 일신상의 이유로 당 대표 비서실장직을 사임했다”며 “그동안 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박 실장의 당직 사퇴는 대선 승리 직후 이 대표의 비서실장으로 기용된 지 약 3개월여만이다. 앞서 박 실장은 “더이상 (이 대표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는 것 같다. 도움도 안 될 것 같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박 실장의 사퇴 배경과 관련해 최근 표면화된 당내 윤핵관(윤 대통령 핵심관계자) 측과 이 대표 간 갈등이 이유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제 윤 대통령도 이 대표와 관계를 정리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내놨다. 박 실장은 임명 당시 이 대표의 비서실장직 제안을 몇 차례 고사했고,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이 대표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직접 전화를 걸어 비서실장직 수락을 요청했다. 박 실장은 지난 대선 당시 중앙선거대책본부의 조직본부장을 맡아 선거 승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박 실장은 윤 대통령과 개인적인 친분도 두터운 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 대통령이 2014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로 대구고검에 좌천됐을 때, 당시 울산 중구청장이었던 박 실장과 인연을 맺었고, 이후 교류를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박성민 의원. 연합뉴스

대통령실도 이 대표와 최근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이 대표는 지난 주말 윤 대통령과의 회동설을 놓고 대통령실과 진실게임 양상을 보였다. 이 대표 측이 윤 대통령과 사실상 회동이 있었다는 점을 확인하는 듯한 입장을 보인 반면, 대통령실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공식 부인하면서다. 이 대표는 지난 27일 윤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출국했을 당시에도 직접 배웅한 권성동 원내대표와 달리 공항에 나오지 않았다.

 

윤리위 심사를 앞두고 이 대표에 대한 친윤 그룹의 본격적인 ‘고립작전’이 시작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 대표는 최근 윤핵관인 장제원 의원과도 갈등을 빚어왔다. 윤리위 기류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포착된다. 당 안팎에서는 이 대표에게 윤리위 중징계가 내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퍼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준석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방향으로 달리면 된다”

 

이 대표는 박 당 대표 비서실장이 이날 전격 사임한 것과 관련해 “박 실장에게 어떤 상황인지 설명을 들었고 제가 박 실장의 뜻을 받아들이겠다고 해서 사임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경북 경주에 있는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자력본부 맥스터 현장 시찰을 한 뒤 기자들과 만나 “어제 박 실장이 울산 지역구에 있다가 제가 포항에 있어서 실제로 같이 와서 얘기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대표는 박 실장의 사퇴가 ‘윤심’이 떠난 것을 보여준다는 해석이 있다는 질문에 “뭐 그런 해석은 가능하겠지만, 어제 박 의원과의 대화에서 그런 내용은 없었다”고 답변해 현재 ‘고립무원’에 빠진 상황을 딱히 부정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 대표는 본인의 사퇴설과 관련해서는 “그런 경우는 없다”고 일축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30일 경북 경주 월성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을 방문하기에 앞서 월성원전 홍보관을 찾아 현황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표는 최고위 공개 발언을 보이콧한 이후 지방을 돌며 윤 대통령의 지역발전 공약을 챙기고 있다. 이를 두고 윤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지 않으면서도 최근 자신을 향한 당 내외의 압박에 대해 ‘무력시위’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표는 이날 새벽 페이스북에 “뭐 복잡하게 생각하나. 모두 달리면 되지.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방향으로”라고 적었다. 이 게시물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이 대표는 “저는 아무리 이런 것들이, 계속 정치적 사안이 발생해도 개혁의 동력은 이어나가야 한다고 본다”고 답했다. 이어 ‘특히 당의 지지율 추세나 정부의 지지율 추세 같은 것들도 최근 부침을 겪고 있는 거로 보인다”면서 “이걸 돌파할 방법은 작년 이맘때쯤처럼 개혁에 박차 가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개혁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드린 것”이라고 부연했다.

 

당안팎에선 여당 대표와 대통령 측 간 갈등이 표면화한 데 대한 우려가 크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당내 갈등이 부각돼 국정운영 동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집권) 초기 당내 사정이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에서 야당과 협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국민 입장에서 볼 것 같으면 상당히 짜증스러운 모습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준석계’로 꼽히는 김용태 청년최고위원은 B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불화를 조장해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르겠다. 국정운영 지지율을 떨어뜨려 이 대표가 정말 필요한 사람이라는 여론을 만들기 위한 ‘엑스맨’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김 최고위원은 “윤리위도 섣부른 정무적 판단보다는 수사 결과를 보고 판단하는것이 원칙에 맞다”라고 덧붙였다. 당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일을 극단의 갈등으로 밀고 가고 있다”라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전 김무성·유승민과 친박계 간의 갈등 데자뷔”라고 말했다.

 

◆박지원 “비서실장 사퇴는 ‘알아서 그만 두라’는 대통령 사인”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최근 국민의힘 상황을 두고 “(친윤그룹의) 이준석 고사작전”이라며 이 대표가 자진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전 원장은 “이 대표가 보수당의 대표가 돼서 정권교체에 성공했고 지방선거에 압승을 했지만 태양은 둘이 아닌 하나”라며 “그러면 집권여당의 대표가 어떤 처신을 해야 되는지 잘 알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어떻게 됐든 이준석 당 대표는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본다)”며 "특히 친윤 비서실장까지 오늘 사퇴를 해버렸으면 오동잎 떨어지면 가을이 온 것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 전 원장은 박 실장 사퇴가 이 대표에게 ‘알아서 그만 두라'는 대통령의 사인처럼 느껴진다면서 “(징계위가) 당헌당규상 2주 후로 결정됐지만, 저는 처음부터 ‘거취를 결정해라’ 하는 경고라고 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이 대표가 대표직을) 관둔다고 본다. 그렇게 해야 되는 거 아니냐”며 “험한 사형선고를 받고 죽는 것보다 자기 스스로 물러가서 다시 재기하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파워게임이라고 하는 것은 밀리면 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개의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하면 정치인은 자기 생각이 중요하지 않다”며 “지금 현재 다수의 국민의힘 당원들이, 의원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면 결정해 줘야 한다. 거기서 더 험한 꼴을 볼 필요가 뭐 있느냐”고 했다.

 

박 전 원장은 또 “너무 잔인하다. 저는 이준석 대표를 참 좋아하는데, 저렇게 잔인하게 젊은 사람들을 죽여버리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며 젊은 세대들이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를 거둬 타격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김성진 아이카이스트 대표의 법률 대리인인 김소연 변호사가 30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한편 이 대표에게 성상납을 한 의혹으로 경찰 조사를 받는 김성진 아이카이스트 대표는 “이 대표로부터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날 수 있도록 힘써주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의 법률대리인 김소연 변호사는 30일 서울구치소에서 오전 경찰 접견 조사를 마치고 “김 대표는 경찰 조사에서 자신의 회사인 아이카이스트에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방문해주기를 바랐고, 이를 위해 비대위원이었던 이준석 대표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낸 뒤 대전에서 만나게 됐다”고 했다. 두 사람은 카이스트 03학번 동문이지만, 이를 계기로 서로를 처음 알게 됐다고 김 대표는 전했다.

 

김 변호사는 “2013년 7월11일 김 대표가 이 대표와 밥을 먹으며 ‘대통령을 모실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었더니, 이 대표가 (박 전 대통령을 연결해줄) 두 명을 거론하며 ‘힘을 써보겠다. 도와주겠다’고 답했다”며 “알선수재죄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가 이런 말을 한 직후 성상납을 받았기 때문에, 직무와 관련한 일을 잘 처리해 주도록 알선해 주고 그 대가로 금품을 받는 범죄인 알선수재에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김 변호사는 이 대표가 언급한 두 명에 대해서 “이 대표가 형님처럼 모시는 국회의원이고, 나머지 하나는 기업인”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