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단편소설 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에 ‘비타민’이란 단편소설이 있다. 그의 마지막 단편소설집인 ‘대성당’ 속에 담긴 열두 편의 소설 중 한 작품이다. 작품의 내용은 이렇다. 사양산업이 된 비타민 판매업을 하는 아내 패티는 실적이 없어 고민 중이다. 남편인 ‘나’는 아내의 동료와 함께 하룻밤 불륜을 기대하고 술집에서 술을 마신다. 그러다 베트남 참전 퇴역군인에게 행패와 모욕을 당하고 두 사람은 아무 일 없는 듯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스토리가 단순해 재미가 없을 듯 보이지만 의외로 몰입시키고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소설을 읽는 동안 알게 모르게 미국 중산층의 절망감과 허무감이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엄습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내용도 단순하고 문장도 간략한데 그 서늘한 감정의 근원이 어디서 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간단히 해답을 찾아보면 이렇다. 우선 카버의 소설 문장은 스스로 고립되어 세상과의 친화감이나 동질감을 거부하는 듯이 보인다. 패티의 남편 시각에서 묘사되는 소설 공간은 등장인물과 동화되어 있지 않고 고립된 가상의 세계처럼 여겨진다. 게다가 이런 냉정함과 거리감은 인물들은 물론, 작가까지 세상의 윤리나 법칙과 먼 거리에 있는 사람처럼 생각되게 한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허무한 상황이 허무하게 보이지 않고, 절망적 상황이 절망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무섭고 두렵게 여겨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