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바꾼 세계의 역사/로날트 D. 게르슈테/강희진 옮김/미래의창/1만6000원
1944년 6월 6일 새벽 프랑스 노르망디. 어둠을 틈타 육해공을 아우르는 연합군 16만여명은 독일이 점령한 노르망디를 빠르게 침투하는 ‘오버로드 작전’을 개시했다. 이날 작전은 전세가 기운 독일에 쐐기를 박으며 제2차 세계대전을 빠르게 종결시키는 역할을 했다. 시대적 의미가 큰 만큼 ‘노르망디 상륙작전’ ‘덩케르크’ ‘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으로 수차례 영화화되기도 했다.
그런데 왜 하필 6월 6일일까. 답은 바로 날씨다. 작전 성공에는 화력과 병력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구름이 없어 낙하산 부대원들이 목표지점에 정확히 투하할 수 있어야 했고, 전투기와 수송기의 원활한 비행과 착륙을 위한, 보름달의 환한 달빛 같은 조명도 필요했다. 수송 배의 접안을 위해서는 밀물도, 썰물 때도 곤란했다. 땅이 너무 젖으면 탱크와 지프, 트럭 등 이동수단을 이용하기 어려워 희생이 커지는 만큼 지반상황도 고려해야 했다.
당시 연합군은 동부전선 외에 서둘러 제2 전선을 구축할 것을 독촉하는 러시아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악천후는 번번이 연합군 상륙 계획을 연기시켰다. 최고사령관 아이젠하워는 6월 5일을 ‘디데이’로 정했다. 그러나 거사를 코앞에 둔 6월이 돼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며칠간 밤을 새우는 마라톤 회의에도 연기와 강행 사이에서 결론은 나지 않았다. 독일 사령관 에르빈 로멜 장군도 이 정도 악천후에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다고 믿고 생일을 맞은 아내를 만나러 집으로 향할 정도였다. 아이젠하워는 작전을 19일로 미룰까 고민했다. 그때 기상관측팀 담당자가 “한 줄기 서광이 비친다”며 5일 저녁부터 6일 아침까지만 날씨가 잠시 잠잠할 것이란 ‘기상 예보’를 전했다. 그렇게 하늘이 허락한 ‘단 하루’로, 서유럽은 비로소 히틀러의 지배를 벗어났다. 그리고 아이젠하워가 미루려고 했던 19일엔, 대규모 돌풍이 일었다. 계획이 하루가 아니라 2주가 밀렸다면, 역사는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총아이자 공포정치의 대명사인 로베스피에르 역시 ‘날씨 탓’을 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는 반대 여론을 잠재우고 대중을 설득하기 위해 1794년 7월 27일 파리에서 연설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잠시 시간을 지체하는 사이 28일 자정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고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자리를 떠버렸다. 그리고 바로 그날 파리코뮌에 보내는 호소문을 작성하던 중 국민공회 군대에 체포돼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었다. 프랑스 정치가이자 외교관인 탈레랑이 “비는 반혁명적”이라고 한 이유다.
신간 ‘날씨가 바꾼 세계의 역사’는 이렇게 날씨가 역사의 흐름을 결정한 요소가 된 24개의 사례를 소개한다. 미국의 독립을 도운 비바람과 눈 폭풍, 나폴레옹의 발목을 잡은 워털루의 폭우와 진흙탕, 살라미스 해전에서 크세르크세스 1세에게 대패를 안긴 해풍, 마야 문명의 멸망을 가져온 무분별한 벌목에 따른 이상기후 등이 흥미롭다. 앞서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세상을 구한 의학의 전설들’ 등을 낸 바 있는 저자는 이번에도 대중이 역사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했다.
날씨는 장기적인 정치 지형도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1980년 4월 ‘독수리 발톱 작전’ 실패가 불러온 미국의 ‘우향우’가 그렇다. 독수리 발톱 작전은 1979년 11월 4일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 추종자들이 억류한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 직원의 탈출 작전이다. 이를 막은 것은 ’하부브’, 사막 지역에 부는 모래폭풍이다. 하부브는 계절풍이 건조한 공기층을 만나면서 회오리가 돼 엄청난 양의 모래와 먼지를 동반한다. 미군 헬기는 하부브로 서로 부딪히며 요원 8명을 잃었고 작전은 ‘대실패’로 끝났다. 이를 계기로 지미 카터 대통령은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에게 권좌를 내줬다. 당시 카터가 대승을 거둔 남부 주들은 지금까지 공화당의 손아귀에 놓였다.
이런 역사적 전환에 날씨만이 원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동안 쌓인 문화, 지리적, 사회적 원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날씨가 승부의 저울을 움직인 것만은 분명하다.
지금 창밖의 날씨가, 내일 인류의 역사를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