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범여권 차기 지도자로서 오세훈 서울시장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조선제일검이라는 별칭까지 얻을 정도로 보수층을 중심으로 인기몰이를 하는 한 장관이 팬덤 등을 등에 업은 결과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권 출범 초기에 한 장관의 정치 지도자 적합도에 큰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범보수 차기 지도자급으로 부상한 장관 한동훈
범보수 차기 정치지도자 적합도에서 오세훈 서울시장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공동 1위를 차지한 여론조사 결과가 3일 나왔다.
여론조사업체 리서치뷰가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체 조사에서 오 시장과 한 장관이 나란히 15%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홍준표 대구시장 12%,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9%, 안철수 의원 8%, 이준석 대표 6% 등이었다.
특히 보수층 응답자 416명의 여론조사를 보면 한 장관이 23%를 차지해 오 시장보다 1%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보수층에서 한 장관에 대한 차기 정치지도자 적합도가 더 높았다는 의미다. 법무부 장관 취임 한 달을 갓 넘긴 한 장관이 유력한 범보수 차기 대권 주자인 오 시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이런 ‘한동훈 현상’은 이미 취임 전후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의 말과 행동은 물론, 패션부터 취미까지 다방면으로 대중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이날 기준 한 장관의 법무부 장관 취임식 영상 조회수는 160만회를 넘겼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61만회)과 문재인 전 대통령(68만회) 취임식 영상보다 더 많은 조회수다.
◆취임 한 달 만에 오세훈과 어깨 나란히, 이유는?
보수층의 지지를 받는 이런 ‘한동훈 효과’에는 강남 엘리트 이미지와 능력 있는 특수통 검사라는 이미지가 한몫했다.
한 장관은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나 현대고와 서울대 법대(92학번)를 졸업했다. 강남 8학군에서 서울대로 이어지는 대표적인 엘리트 코스다. 대학 4학년 때인 1995년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첫 검찰 발령지도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으로 엘리트 검사의 전형을 따르고 있다.
그는 SK그룹 분식회계 사건에서 기업 회계를 꿰뚫는 모습을 보였고 이후 불법 대선자금 수사팀과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 수사팀 등에 참여하며 특수통으로서 경력을 쌓아갔다. 특히 2015년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장 당시 동국제강 회장의 횡령·원정도박 사건을 수사하는 등 여러 기업인의 구속을 이끌어 ‘재계 저승사자’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2019년 7월에는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에 임명되면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승진해 최연소 검사장 타이틀도 얻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 장관의 인기 비결에 대해 “외모나, 언변 등 자기 업무에 대한 전문성, 깔끔함, 그런 부분에 대해서 ‘말로만 듣다가 직접 보니까 뛰어나네’란 평가가 있는 것”이라고 평가하고 “한동훈 장관이 정무적 감각이 좋은 분인 것 같다. 취임사를 보니 야당이 시비 걸만한 이야기들은 없었다. ‘증권범죄합수단 부활하겠다, 시장 질서를 만들겠다, 교정 행정에 대해서 강조하겠다’는 부분 등이 정무적인 감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중도에 먹힌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화 전략
“국감이 기다려진다.”
직장인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 한 법무부 직원에 올린 글이다. 그는 “지난 3년간 국정감사 때 법무부를 예능으로 만들었는데 올해는 국감이 기다려진다”며 “밤을 새워서 뻗치기를 해도 행복할 것 같다”고 했다. 한 달을 넘긴 한 장관의 취임 이후 바뀐 법무부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법무부의 분위기에는 한 장관이 취임 이후 문재인 정부 당시 추미애 법무부와 차별화를 꾀하고 있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한 장관은 지난달 14일 법무부 주례간부회의에서 “수용자·소년원생을 주제로 한 정책·홍보 콘텐츠를 제작할 때 이들에게 모욕감을 주지 않도록 세심하게 살피고 점검하라”고 당부했다.
앞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2020년 설 연휴 때 소년원생들에게 세배받는 모습을 유튜브 홍보 채널에 게시했는데 당시 모자이크 처리한 영상이었지만 인권 침해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한 장관은 또 장관 의전을 없애고, 보고서 등 공문에서 ‘장관님’, ‘차관님’에서 ‘님’자를 빼는 등 권위주의를 내려놓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 전임 장관들과 달리 취임 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끊고 일에만 집중하는 모습이다. 이런 이미지가 문재인 정권에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보수층을 파고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페이스북을 통해 정책이나 사회적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입장을 피력했던 추미애, 박범계 두 전임 장관들의 행보와는 대조적이다. 법무부 직원들은 당시 두 전임 장관들이 SNS를 통해 법무부 내부 사정을 공개하거나 아직 논의도 하지 않은 정책을 공언하는 경우가 많아 뒷수습에 애를 먹은 바 있다.
◆정권 초기, 한 장관 차기 지도급 평가는 성급
그러나 정권 초기의 이런 한 장관 이미지가 계속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여론조사에 대해 “차기 대선을 많이 앞둔 상황에서 평가됐다”며 “한 장관에 대한 평가도 구체적인 대선후보나 당의 대표가 아닌 단순 인물에 대한 호감도 수준의 조사로 평가받는 게 맞다”고 평가했다. 이어 “한 장관이 현재 오 시장과 비슷한 지지를 받는다 해도 정치인으로서의 평가가 아닌 개별 인간에 대한 평가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차기 정치지도자 적합도 조사에서 1위를 기록한 것과 관련해서는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현재 민주당 내부에 뚜렷한 대항마를 찾기 힘들고 대선이 지난 지 얼마 안 된 상황이라 이 의원이 1위를 기록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며 “지난 대선 당시 인물론이 재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범진보는 이 의원(33%)에 이어 이낙연 전 대표(15%), 김동연 경기지사(11%) 등 지난 대선 출마한 인사들이 차기 정치지도자로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서는 ‘데드크로스’ 결과가 또 나왔다. 윤 대통령이 직무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45%,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51%로 집계됐다. 리서치뷰의 직전 조사인 5월 28∼30일 대비 긍정 응답률은 8%포인트 떨어졌고, 부정 응답률은 11%포인트 올라갔다.
정당지지도는 국민의힘이 45%, 더불어민주당이 39%로 집계돼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오차범위(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내인 6%포인트 앞섰다. 직전 조사 대비 국민의힘은 2%포인트, 민주당은 1%포인트 동반 하락한 결과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