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북부 뉴잉글랜드 지역의 대표적인 휴양지인 케이프 코드(Cape Cod) 한 해변에 갔다가 이런 문구를 봤다. “A day at the beach restores the soul(바닷가에서 보낸 하루는 영혼을 회복시킨다).” 이 글이 적힌 곳은 바닷가 모래밭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놓여 있던 벤치였다. 미국에는 가족 중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가 자주 가던 해안이나 공원, 산책로에 그의 이름으로 벤치를 하나 만들어 기증하는 문화가 있다. 위의 문구가 씌어 있던 곳은 2020년에 세상을 떠난 브렌다 진 스미스라는 여성 가족(아마도 자녀들)이 기증한 벤치였다. 등받이에 붙은 자그마한 동판에는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이 바닷가를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알려주는 짧은 글이 있었다.
그런데 내 눈길을 끈 것은 동판 마지막 줄에 등장하는 “바닷가에서 보낸 하루는 영혼을 회복시킨다”라는 문구였다. 제법 낯이 익은 문구였기 때문에 세상을 떠난 여성이 처음 한 말은 아닌 게 분명했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짐작대로 바닷가나, 인테리어 소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꽤 유명한 문구였다. 정확하게 누가 언제 만들어냈는지는 모르지만 틀린 말 같지는 않다. 복잡한 도시와 일상에서 벗어나 사람이 많지 않은 해변에서 조용하게 하루를 보낸 후에 정신이 맑아지고 상쾌해지는 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단순히 소수 환자들이 바닷가에 요양을 하러 가는 것은 지금처럼 바캉스를 맞아 일제히 바다로 몰려가는 문화와는 분명히 다르다. 일부 집단 행동이 사회 문화로 확산되려면 계층의 힘이 필수적이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상위 계층 사람들 문화를 따르는 뚜렷한 경향이 있다. 영국에서 이런 변화의 도화선이 된 사람이 조지 4세(1762∼1830)다. 그는 아직 왕자 신분이었던 1783년에 통풍(gout)으로 고생했는데 바닷가에 가서 해수욕을 하라는 의사 처방에 따라 영국 남부 브라이턴(Brighton) 해변으로 간다. 왕족이 바닷가에서 휴식을 취한다는 얘기는 빠르게 퍼져나갔고, 런던에서 100㎞ 떨어진 곳을 찾아갈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생긴 귀족과 평민도 이곳을 찾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1800년대 초가 되면 영국인들 사이에서는 바닷가에서 건강을 회복한다는 개념이 널리 퍼졌고, 당시에 영국 전역으로 확산된 철도는 여유가 별로 없는 일반인들도 해변으로 여행할 수 있게 해줬다. 리버풀 북쪽에 위치한 블랙풀(Blackpool) 해변은 최초로 노동계급을 위한 해변 리조트가 됐다. 왕족이 쉬던 브라이턴 해변도 다르지 않아서 미국 뉴욕시 브루클린 남부에 있는 유명한 브라이턴 해변도 영국 해변 이름을 가져다 붙일 만큼 해변 휴양지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런데 알다시피 1800년대는 영국이 세계를 주름잡은 시대였다. 당시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릴 만큼 전 세계에 식민지를 갖고 있는, 돈이 몰리는 나라였다. 그런 영국에서 유행하는 일이라면 다른 나라들도 따라하는 건, 영국 내에서 귀족들의 유행이 평민에게 퍼지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프랑스의 노르망디 해변, 독일 북부와 스칸디나비아 지역 등 대서양을 접한 나라들이 ‘해변에서의 휴식’을 새로운 문화로 받아들였고, 이는 곧이어 중부와 남부 유럽까지 확대되었다.
흥미로운 건 정작 전 세계 사람들을 해변으로 달려가게 만든 영국인은 바닷물에 들어가서 수영을 하는 행동을 그야말로 목욕처럼 극도로 사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서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물에 들어가는 걸 꺼렸다는 점이다. 수영복이 없던 때라 옷을 입고 들어가는 것임에도 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치료를 위해 처음 해수욕을 하던 사람들이 왕족과 귀족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찾아오지 못하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구나 찾아오는 공공 해변에서 물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영국이 아닌 유럽 본토에 사는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