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물가 이미 7.4%↑…공공요금 인상·휴가철 겹쳐 고통 가중 [외환위기 후 첫 물가 6%대 상승]

비상등 켜진 서민경제

상승요인 줄줄이… 하반기 더 암울
취약계층 씀씀이 더욱 위축 우려
외식물가도 8.0% 30년 만에 최고

전문가 “고물가속 금리인상 불가피
다각도 대책 마련 서둘러야” 지적
정부, 밀수입가 상승분 70% 지원
IMF 외환위기 이후 약 24년 만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대로 올라섰다는 발표가 나온 5일 서울 한 대형마트 식용유 코너에서 한 시민이 제품을 고르고 있다. 이재문 기자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대에 진입하면서 서민 경제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특히 구입 빈도가 높은 필수 품목으로 구성된 생활물가지수가 7%를 훌쩍 넘기면서 취약계층의 씀씀이는 더욱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물가가 오르는 국면에서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충격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취약계층 지원 등을 위한 추가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5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생활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7.4%에 오르며 지난 1998년 11월(10.4%) 이후 가장 높은 상승폭을 기록했다. 생활물가지수는 전체 458개 품목 중 구입 빈도와 지출 비중이 높아 국민들이 가격 변동을 민감하게 느끼는 144개 품목으로 작성된 지수로, 체감물가와 직결된다.

농축수산물은 축산물(10.3%)과 채소류(6.0%)를 중심으로 4.8% 오르며 지난 5월(4.2%)보다 오름폭이 커졌다. 감자(37.8%), 배추(35.5%), 포도(31.4%), 수입 쇠고기(27.2%), 닭고기(20.1%), 돼지고기(18.6%) 등의 상승률이 높았다. 지난 4∼5월 전기·가스요금이 인상됨에 따라 전기·가스·수도도 1년 전과 비교해 9.6% 올랐다.

 

외식물가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개인서비스 중 외식 상승률은 8.0%로 1992년 10월(8.8%) 이후 29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외식 수요가 늘어나는 가운데 원자재 가격과 운영경비가 상승한 데 따른 것이다. 생선회(외식)와 치킨은 각각 10.4%, 11.0% 상승했다.

명동식당가 5일 서울 명동의 식당가에 메뉴와 인상된 가격표가 안내되어 있다. 올 상반기 농축산물 가격 오름세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곡물 ,원자재, 물류비 상승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원부자재 가격이 급등해 식음료업계와 외식 물가 가격 인상이 계속되고 있다. 남제현 선임기자

더 큰 문제는 하반기에도 이런 물가 상승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당장 이달부터 전기요금은 4인 가구 기준 평균 월 1535원, 가스요금은 가구당 월 2220원 올랐다. 또 오는 10월 전기요금의 기준연료비가 kWh당 4.9원, 가스요금 정산단가가 2.30원으로 인상될 예정이다. 전기·가스요금 자체가 전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지만 공공요금은 모든 상품·서비스의 원재료인 만큼 전반적으로 물가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아울러 다음달 휴가철이 정점을 지나는 가운데 예년보다 이른 추석(오는 9월10일)을 앞두고 성수품 소비 증가가 예상되는 등 수요 측 압력도 커지고 있다. 장마·폭염으로 농산물 가격이 오르고 있는 것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물가 상승세가 가팔라지면서 한국은행이 최초로 한번에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는‘빅스텝’을 단행할 수 있다는 전망도 짙어지고 있다. 한은은 이날 이환석 부총재보 주재로 물가 상황 점검회의를 개최한 뒤 고유가 지속, 거리두기 해제에 따른 수요 측 물가 상승 압력 확대, 전기료·도시가스 요금 인상 등의 영향으로 소비자물가가 당분간 높은 오름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서울 시내 한 건물의 전기계량기.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고물가가 서민 경제 위기로 전이되지 않도록 정부가 다각도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본적으로는 유동성 회수를 위한 금리 인상은 불가피하다”면서 “전기요금 등이 더 오르기 때문에 (물가 상승에) 추가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따로 지원을 하고, 기업의 비용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모색해야 할 것 같다”고 조언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올해 (부가가치세율을) 2% 정도 낮추고, 내년에도 물가가 안 잡히면 추가로 인하하되 물가가 잡히면 원상태로 정상화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농림축산식품부는 국내 제분업체를 대상으로 밀 수입가격 상승분의 70%를 한시적으로 지원하는 ‘밀가루 가격 안정 지원사업’을 시행하기로 했다. 농식품부는 올해 하반기 밀가루 출하 가격을 동결하거나 밀 수입가격 상승분의 10% 범위 내에서 밀가루 가격을 인상한 제분업체에 대해 예산을 지원하기로 했다. 밀가루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밀 가격 상승분의 70%를 정부가 지원하고 나머지 20%는 제분업체가, 10%는 소비자가 각각 부담하게 된다. 지원 기간은 이달부터 내년 1분기(예산 소진 시)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