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 비상금’인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한 달 새 100억달러 가까이 줄어들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으로, 최근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자 외환 당국이 환율 방어를 위해 개입에 나섰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5일 발표한 외환보유액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4382억8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올해 5월 말(4477억1000만달러)보다 94억3000만달러 감소한 것이다. 감소 폭으로 따져보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1월(-117억5000만달러) 이후 13년7개월 만에 가장 큰 수준이다.
달러 강세가 심화하면서 유로·파운드 등 다른 외화자산의 미 달러 환산액이 줄어든 영향도 있다. 실제로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지난달 말 105.11로, 전월(101.67)보다 3.4% 올랐다.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는 3.1%, 파운드화는 4.2%, 엔화는 6.5% 하락했다. 한은 관계자는 “기타통화 외화자산의 미 달러 환산액과 금융기관 예수금이 줄어들고, 외환시장 변동성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 등으로 외환보유액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국제통화기금(IMF)이 권고하는 적정 수준 아래로 떨어진 상태다. IMF는 △연간 수출액의 5% △시중 통화량(M2)의 5% △유동 외채의 30% △외국인 증권 및 기타 투자금 잔액의 15% 등을 합한 규모의 100~150% 수준을 적정 외환보유액으로 산출한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액 비중은 98.94%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갔다. 올해 들어 외환보유액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외환보유액 비중은 더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외환보유액을 자산별로 나눠보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국채·회사채 등 유가증권(3952억7000만달러)이 한 달 전보다 62억3000만달러 줄면서 4000억달러선에서 내려왔다. 예치금(192억3000만달러)은 26억4000만달러 감소했다. IMF에 대한 교환성 통화 인출 권리인 ‘IMF 포지션’(44억2000만달러)과 특별인출권(SDR·145억7000만달러)은 각각 6000만달러, 5억1000만달러 줄었다. 금은 시세를 반영하지 않고 매입 당시 가격으로 표시하기 때문에 전월과 같은 47억9000만달러로 집계됐다.
한국의 외환보유액 규모는 5월 말 기준 세계 9위 수준이다. 올해 3월에는 8위였지만, 4월 사우디아라비아(4516억달러)가 8위에 오르면서 한 계단 내려온 순위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외환보유액은 중국이 3조1278억달러로 가장 많았고, 일본(1조3297억달러)과 스위스(1조411억달러) 등이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