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약 24년 만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대로 올라섰다. 물가가 오르는 속도도 빨라 조만간 물가상승률이 7∼8%대를 찍을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특히 구매 빈도가 높은 필수 품목으로 구성된 생활물가지수가 7%를 훌쩍 넘기면서 서민 경제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기록적인 물가 상승세를 진정시키기 위해 오는 13일 한국은행이 ‘빅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할 경우 대출자들의 이자 비용이 불어나 실질소득 감소에 허덕이는 서민층의 부담이 한층 가중된다.
이런 상황에서 ‘외화 비상금’인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한 달 새 100억 달러 가까이 줄어들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자 외환 당국이 환율 방어를 위해 개입에 나섰기 때문이다.
◆단숨에 6%대 물가…여름철 7∼8%대 치솟을 수도
5일 통계청에 따르면 6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8.22(2020=100)로 전년 동월 대비 6.0% 상승했다. 물가상승률이 6%대를 찍은 건 1998년 11월(6.8%) 이후 23년7개월 만이다.
물가 상승세는 석유류 등 공업제품과 개인서비스가 견인했다. 품목별로는 러시아산 원유 수출가격 상한제 도입 가능성 등의 영향으로 석유류가 전년 대비 39.6% 오르는 등 공업제품이 9.3% 상승했다. 농축수산물은 농산물 가격이 5개월 만에 상승세로 전환되면서 4.8% 올랐다. 석유류와 농축수산물의 물가기여도는 각각 1.74%포인트, 0.42%포인트를 기록, 공급 측 요인에 따른 물가 불안이 확대됐다.
국제 원자재·곡물 가격 상승으로 원재료비가 오르면서 개인서비스 물가(5.8%)도 전월(5.1%) 대비 오름폭을 키웠다. 여기에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 상승률(4.4%)도 2009년 3월(4.5%)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물가의 기조적 흐름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불붙은 물가상승 속도를 고려하면 조만간 물가상승률이 7∼8%대까지 오를 가능성도 있다. 당장 이달부터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이 올랐고, 내달에는 예년보다 이른 추석과 휴가철의 영향으로 수요가 늘어나는 등 물가 자극 요인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10월(3.2%) 3%대로 올라선 뒤 지난 3월(4.1%)과 4월(4.8%)에 4%대를 기록했다. 이후 5월 5.4%로 오른 뒤 지난달 단숨에 6%대로 상승했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물가가 7∼8%대까지 오를 가능성에 대해 “지금처럼 높은 상승 폭을 유지하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도 이날 “우크라이나 사태의 장기화와 글로벌 공급망 차질 등에 따른 국제 에너지·곡물가 상승 영향으로 당분간 어려운 물가 여건이 지속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급등한 장바구니 물가·‘빅스텝’ 가능성↑…서민 경제 어쩌나
5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생활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7.4%에 오르며 지난 1998년 11월(10.4%) 이후 가장 높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생활물가지수는 전체 458개 품목 중 구입 빈도와 지출 비중이 높아 국민들이 가격 변동을 민감하게 느끼는 144개 품목으로 작성된 지수로, 체감물가와 직결된다.
농축수산물은 축산물(10.3%)과 채소류(6.0%)를 중심으로 4.8% 오르며 지난 5월(4.2%)보다 오름폭이 커졌다. 감자(37.8%), 배추(35.5%), 포도(31.4%), 수입 쇠고기(27.2%), 닭고기(20.1%), 돼지고기(18.6%) 등의 상승률이 높았다. 지난 4∼5월 전기·가스요금이 인상됨에 따라 전기·가스·수도도 1년 전과 비교해 9.6% 올랐다.
외식물가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개인서비스 중 외식 상승률은 8.0%로 1992년 10월(8.8%) 이후 29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외식 수요가 늘어나는 가운데 원자재 가격과 운영경비가 상승한 데 따른 것이다. 생선회(외식)와 치킨은 각각 10.4%, 11.0% 상승했다.
더 큰 문제는 하반기에도 이런 물가 상승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당장 이달부터 전기요금은 4인 가구 기준 평균 월 1535원, 가스요금은 가구당 월 2220원 올랐다. 또 오는 10월 전기요금의 기준연료비가 kWh당 4.9원, 가스요금 정산단가가 2.30원으로 인상될 예정이다. 전기·가스요금 자체가 전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지만 공공요금은 모든 상품·서비스의 원재료인 만큼 전반적으로 물가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아울러 다음 달 휴가철이 정점을 지나는 가운데 예년보다 이른 추석(오는 9월10일)을 앞두고 성수품 소비 증가가 예상되는 등 수요 측 압력도 커지고 있다. 장마·폭염으로 농산물 가격이 오르고 있는 것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물가 상승세가 가팔라지면서 한은이 최초로 한 번에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을 단행할 수 있다는 전망에도 힘이 실린다. JP모건은 한은이 이달 빅스텝에 이어 8·10·11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추가 인상해 연말 기준금리가 3.0%에 도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금융권에서도 한은이 오는 13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빅스텝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물가가 오르는 국면에서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충격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취약계층 지원 등을 위한 추가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본적으로는 유동성 회수를 위한 금리 인상은 불가피하다”면서 “전기요금 등이 더 오르기 때문에 (물가상승에) 추가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따로 지원하고, 기업의 비용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모색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환율 방어에 외환보유액 금융위기 이후 최대 폭 감소
한은이 5일 발표한 외환보유액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4382억8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올해 5월 말(4477억1000만달러)보다 94억3000만달러 감소한 것이다. 감소 폭으로 따져보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1월(-117억5000만달러) 이후 13년7개월 만에 가장 큰 수준이다.
외환보유액은 올해 3월부터 4개월 연속 감소세다. 3월 39억6000만달러, 4월 85억1000만달러, 5월 15억9000만달러, 6월 94억3000만달러가 줄면서 4개월 동안 234억9000만달러가 급감했다. 국제수지 불균형을 보전하거나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보유하고 있는 대외 지급준비자산인 외환보유액이 단기간에 이 정도 폭으로 줄어든 것은 이례적이다.
올해 들어 외환보유액이 급감한 이유는 원·달러 환율이 2009년 7월 이후 13년 만에 처음으로 1300원을 넘어서는 등 환율이 치솟자 외환 당국이 환율 매도 조치로 개입에 나섰기 때문이다. 통상 환율은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결정되지만, 급등이나 급락 등 시장 안정을 위협할 정도로 일정 방향으로 쏠리면 외환 당국이 외환보유액을 사용해 달러를 사거나 팔아 시장 안정 조치를 취한다. 외환 당국은 올해 1분기 외환시장에서 83억1100만달러를 순매도했다.
달러 강세가 심화하면서 유로·파운드 등 다른 외화자산의 미 달러 환산액이 줄어든 영향도 있다. 실제로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지난달 말 105.11로, 전월(101.67)보다 3.4% 올랐다.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는 3.1%, 파운드화는 4.2%, 엔화는 6.5% 하락했다. 한은 관계자는 “기타통화 외화자산의 미 달러 환산액과 금융기관 예수금이 줄어들고, 외환시장 변동성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 등으로 외환보유액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