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21일 누리호 발사 성공으로 우리나라는 세계 11번째로 자력 우주로켓 발사에 성공한 나라가 되었다. 1957년 10월4일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 발사를 성공한 지 65년 만의 일이다.
소련의 스푸트니크 발사 성공은 스스로를 과학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강국이라 생각했던 미국에는 ‘스푸트니크 쇼크’라 부를 만큼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우주개발에 한걸음 뒤처졌다고 생각한 미국은 1958년 나사(NASA·항공우주국)를 창설했고,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의회에서 ‘인간을 달에 보내고 안전하게 지구로 귀환시킨다’는 달 정복 선언 연설(Moon Shot Speech)을 한다. 그리고 1969년 7월20일 아폴로 11호를 통해 미국은 정말 달 탐사에 성공한다. 프랑스 공상과학 작가 쥘 베른이 ‘지구에서 달까지’란 소설을 발표한 지 근 104년 만이다. 사실 케네디 대통령이 달 정복 선언을 하게 된 배경에는 연설 6주 전 소련이 유인우주선 발사를 통해 세계 최초의 우주인을 배출한 것에 대한 조급증도 있었다고 알려진다. 그러나 조급했던 선언 이후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뒤따랐다. 스푸트니크 쇼크는 교육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과학·기술·공학·수학(STEM)과 같은 기초학문 교육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었다. 과학계에 대한 지원도 대폭 증대되어 우주 경쟁은 현재 인류 과학기술의 발전에 일정 부분 기여하게 되었다.
스푸트니크 발사 성공은 미국 사회에 커다란 공포를 심어주었다. 그건 핵을 실은 로켓이 가져올 핵전쟁에 대한 공포였다. 아무런 방해 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 미국 상공을 도는 인공위성 역시 공포였다. 하지만 소련 인공위성이 지나다니는 하늘을 보며 미국인 모두가 공포를 느낀 것은 아니었다. 하늘에 새로운 별이 뜬 1957년 10월 많은 미래 과학자들이 하늘을 쳐다보며 로켓과학자의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에 위치한 광산도시 ‘콜우드’의 평범한 학생, 호머 히컴도 그중 하나였다. 호머는 스푸트니크 발사 소식을 듣고 고등학교 때부터 직접 로켓을 만들며 로켓과학자로의 여정을 시작한다. 호머는 발사에 실패하고 좌절할 때마다 다시 용기를 불어넣어 주던 담임선생님 도움으로 결국 버지니아 공과대학에 진학하여 엔지니어가 되고, 이후 나사 엔지니어가 되어 미국 로켓 개발에 참여한다. 이 이야기는 히컴 박사의 자서전 ‘로켓 보이스’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10월의 하늘’이란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