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당 대표 징계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으면서 처음 겪는 위기에 직면했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8일 이준석 대표에 대해 ‘당원권 정지 6개월’이라는 중징계 처분을 결정했다. 징계 사유는 성 상납 증거인멸 교사 의혹과 관련한 품위 유지 의무 위반이다. 윤리위는 지난 4월21일 징계 절차 개시가 결정된 지 약 2개월 반 만에 결론을 냈다.
이양희 윤리위원장은 징계 결정 사유에 대해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 이하 당원은 윤리규칙 4조 1항에 따라 당원으로서 예의를 지키고 자리에 맞게 행동하여야 하며 당의 명예를 실추시키거나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언행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에 근거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준석 당원은 김 실장이 지난 1월 대전에서 장모 씨를 만나 성상납과 관련한 사실확인서를 작성받고 7억원 상당 투자유치약속 증서를 작성해준 사실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소명했으나, 윤리위가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위 소명을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윤리위는 이 대표가 김철근 당 대표 정무실장을 통해 성 상납 의혹 사건 관련 증거인멸에 나섰다는 의혹을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위원장은 “징계 심의 대상이 아닌 성 상납 의혹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았다”면서 “그간 이준석 당원의 당에 대한 기여와 공로 등을 참작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했다. 윤리위는 이 대표의 핵심 측근으로, 증거인멸 의혹에 연루된 김철근 당 대표 정무실장에 대해서는 ‘당원권 정지 2년’이라는 고강도 징계 결정을 했다.
이 대표는 이날 ‘불복’ 의사를 밝히고 당 대표직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다고 못 박았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징계 의결 즉시 효력이 발생해 당 대표 권한이 정지되고 원내대표가 직무대행을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이 대표가 당 대표로서의 권한이 정지되는 것이지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권 원내대표 자신이 당 대표 직무대행을 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권 원내대표는 ‘이 대표가 불복 의사를 밝혔는데도 직무대행체제가 되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해석한다”고 말했다.
◆가세연이 던진 의혹 제기가 당 대표 징계로
이번 사태는 지난해 12월27일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가 “이준석 대표가 2013년 김성진 아이카이스트 대표로부터 대전의 한 호텔에서 성접대를 받았다”라며 의혹을 제기한 것에서 시작됐다.
이 대표는 이틀뒤인 29일 가세연 출연진인 강용석 변호사와 김세의 전 기자를 정보통신망법 위반(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강남경찰서에 고소했다.
가세연은 이 대표를 성 비위 의혹으로 당 윤리위에 제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 등으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며 맞받아쳤다. 이때까지만해도 당 윤리위는 이 대표의 성 비위 의혹에 대해 징계 절차 불개시 결정을 내리면서 당내에서의 논란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한 분위기였다.
가세연은 지난 3월30일 유튜브를 통해 이 대표가 김철근 당대표 정무실장을 통해 성 상납 증거인멸을 시도했다는 의혹을 다시 제기했다. 김 실장이 지난 1월 김성진 대표 측 장모 이사(성 접대 의혹 제보자)를 만나 한 피부과 병원에 7억원의 투자 유치를 약속하는 각서를 써주는 대신 ‘성 상납은 없었다’는 취지의 사실 확인서를 받았다는 주장이다. 그러자 이 대표는 지난 4월9일 가세연 강용석 변호사가 “(국민의힘에) 복당 시켜주면 영상을 삭제할 것을 약속한다”고 말하는 통화 녹취를 공개하며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논란이 다시 불거지자 당 윤리위는 지난 4월21일 이 대표에 대한 징계 절차 개시를 결정했다. 보수 계열 정당 역사상 당 대표에 대한 징계 절차 개시는 사상 초유의 일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조치였다. 윤리위가 이때 언론에 공개한 징계 사유는 ‘성 상납 증거인멸 교사 의혹’에 따른 품위유지 의무 위반이었다. 당내에서는 경찰의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윤리위가 이 대표에 대한 징계 안건을 회부한 것이 정당한지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이후 6·1 지방선거를 치르느라 한동안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던 이 사태는 선거가 끝나고 윤리위 회의 일정이 잡히면서 그야말로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윤리위는 지난달 22일 이 대표에 대한 징계 논의 재개하고 김 실장을 참고인으로 불러 진술을 청취했다. 김 실장에 대한 징계 절차 개시 결정한 윤리위는 2주 뒤인 7월7일 이 대표의 소명을 들은 뒤 이 대표에 대한 징계 안건을 심의·의결하기로 결정한다.
이즈음 경찰 수사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달 30일 경찰은 이 대표의 알선수재 사건과 관련해 수감 중인 김성진 대표를 1차 참고인 조사했으며, 지난 5일 2차 참고인 조사를 했다. 김 대표는 법률대리인 김소연 변호사를 통해 “이 대표로부터 성 상납 한달여 후인 2013년 8월15일에 ‘박근혜 시계’를 선물 받았다”며 “이 시계를 찾아 보관 중”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윤리위가 8일 이 대표에 대해 ‘당원권 정지 6개월’이란 중징계를 내리자 당 안팎에서는 경찰의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에 따라서 이 대표에게 중징계를 내린 윤리위 결정이 힘을 받거나, 반대로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르면, 이 대표가 윤리위 징계 결정에 불복할 경우 징계 의결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윤리위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대표에 대한 징계는 빠르면 18일 최종 확정될 전망이다.
◆‘윤핵관’ 배후설도 스멀스멀 계속돼
이 대표에 대한 징계가 당내 권력 구도를 둘러싼 다툼과 연관돼있다는 시선이 적지 않다. 이번 사태에는 배후가 있고, 그 배후는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라는 주장도 계속되고 있다. 이 대표 역시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사실상 배후에 ‘윤핵관’이 있다고 공개적으로 지목했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이양희 위원장은 7일 심의회의에 들어가기 앞서 취재진 앞에서 “요즘 너무 터무니없는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윤핵관’에 의해 기획된 윤리위다’, ‘마녀사냥식 징계다’, ‘윤리위를 해체할 권한은 당 대표에게 있다’ 등 발언은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그러면서 “어떠한 정치적 이해득실도 따지지 않고 오롯이 사회적 통념과 기준에 근거해 사안을 합리적으로 심의하고 판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이날 회의장 앞에서도 자신의 의혹에 대한 ‘배후설’을 언급했다. 이 대표는 마스크를 벗고 굳은 표정으로 취재진 앞에서 “허”라는 짧은 탄식과 함께 입을 열었다. 이 대표는 “오늘 드디어 세 달여 만에 이렇게 윤리위에서 소명 기회를 갖게 됐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지금 윤리위 출석을 기다리는 사이, 정말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어렵겠지만”이라며 “한 언론에서 보도한 내용을 보고 정말 제가 지난 몇달 동안 뭘 해온 건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자신에 대한 성접대 의혹 폭로 배경에 정치인이 있다고 주장하는 음성 파일이 나왔다는 jtbc 보도를 거론한 것이다.
한편 김 대표 측 김소연 변호사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jtbc 보도와 관련해 “윗선은 전혀 없다. 장 이사는 재미있게 얘기하길 좋아하시는 분”이라며 “윤핵관이 장 이사를 시켜서 이준석의 성 상납 사건을 기획하게 시킨 것인가. 국민들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jtbc 보도에서 ‘윗선’으로 나온 인사를 거론하면서 “내로라하는 이핵관(이준석 핵심 관계자)으로 새보수당 사무총장 맡았던 사람이고 하태경 의원과 깐부”라며 “성접대 사건을 굳이 막아서 이준석을 살려야 하는 이핵관이 누구냐”고 반문했다.
◆이준석 장외서 반격 나서나…징계 결정 뒤집긴 어려울 듯
이 대표는 자신 사퇴는 없다는 입장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했다. 이 대표는 8일 오전 KBS 라디오에 나와 ‘당 대표에서 물러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저는 그럴 생각 없다”고 말했다. 그는 “윤리위원회 규정을 보면 윤리위원회의 징계 결과 징계 처분권이라고 하는 것이 당 대표에게 있다”며 “(징계를) 납득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면 우선 징계 처분을 보류할 그런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어 “처분이 납득 가능한 시점이 되면 그건 당연히 그렇게 받아들이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렇지 않다). 가처분이라든지 재심이라든지 이런 상황들을 판단해서 모든 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징계 확정 시까지 최고위 주재 등 대표직을 수행할 것이냐는 질문에 “어차피 최고위라는 것은 다음 주 월요일에 열게 돼 있다”며 “주말에 판단해 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만약 징계가 이대로 확정될 경우 계획에 대해서도 “그것도 판단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진 사퇴 의향에 대해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거듭 일축했다.
이 대표는 이번 윤리위 결과에 대해서 “수사 절차가 시작되지도 않은 상황 속에서 6개월 당원권 정지라는 중징계가 내려졌다는 것은 저는 아무래도 윤리위원회의 형평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수사기관의 판단이나 재판 결과가 나오면 그에 따라 윤리위가 처분을 내리는 것이 지금까지 정치권에서 통용되던 관례”라며 “다른 것을 제쳐두고 제 것만 쏙 빼서, 수사 절차도 아직 시작되지 않은 상황에서 (윤리위가 징계를) 판단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좀 의아하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이번 윤리위에 영향을 준 세력과 관련해 “윤핵관이라고 분류되는 분들은 굉장히 신나서 얘기를 많이 하시더라”면서 “윤심(尹心)라는 것이 등장하는 그런 개연성은 아직 전혀 모르겠다”고 밝혔다. 이번 ‘윤리위원 중에서도 윤핵관이 심은 사람들이 있느냐’는 질문엔 “그렇게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면서도 “유상범 의원이 ‘범윤핵관’으로 분류될 수 있는 분이니까 그렇게 할 수 있지만 그게 영향을 절대적으로 미쳤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안철수 당 대표·장제원 사무총장 주장에 대해선 “당내에서는 그런 기획이 있었다라는 얘기도 나오기는 했지만 그거야 한번 찍어 먹어봐야 아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 대표가 이의신청을 하더라도 윤리위가 이를 이유 없음으로 기각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당규에는 ‘당 대표가 특별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최고위원회 의결을 거쳐 윤리위원회 징계 처분을 취소할 수 있다’는 조항도 있지만, 제척 사유 등 논란으로 이 역시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한편 이 대표는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민의힘의 당원이 되는 빠르고 쉬운 길. 온라인 당원가입”이라며 “한달에 당비 1000원 납부약정하면 3개월 뒤 책임당원이 돼 국민의힘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 3분이면 된다”라고 올렸다. 이와 함께 온라인입당이 가능한 링크를 첨부했다. 이는 이 대표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2030 젊은 보수층의 지지세를 모아 반격에 나서겠다는 ‘선전포고’로 해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