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는 어머니가 화내실 때 가장 무서웠다. 그럴 때는 몰래 집을 빠져나와 가능한 한 집에서 먼 곳을 돌아다녔다. 딱히 갈 데가 없으니 나무 그늘 아래 쪼그리고 앉거나 긴 막대기로 저수지를 찔러보는 일이 고작이었다. 어른이 되었지만 아이들을 쫓아낼 만큼 무서운 어머니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시달리지 않으려고 노트북을 챙겨들고 집을 빠져나올 때가 있다. 집에서 그리 멀리 가지는 못하고 동네 카페의 귀퉁이에 앉는 것이 고작이지만 그때 한 편의 시가 쓰인다면 그것보다 큰 행운은 없다. 카페에서 간혹 이웃의 시인을 만나기도 한다. 집보다는 카페가 훨씬 편한 창작 공간이 된다는 것을 공감하게 되는데, 사실 이것도 카페 주인에게 적잖이 눈치가 보이는 일이다.
창작할 때 선호하는 공간은 작가마다 다르지만 집이라는 생활 공간이 창작에 불편하다는 것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그래서 작가들은 주로 인근 카페를 이용한다. 또 더러는 지하철 안이나 야외 벤치에서 글을 쓴다고도 하고 여유가 되는 작가들은 따로 개인 작업실을 꾸리기도 한다. 작가들이 마음먹고 집을 떠나면 빈손으로라도 2년은 살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전국에 적잖은 작가 창작실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서울에는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연희창작촌이 있고, 강원 원주시에는 토지문학관, 횡성군에는 예버덩문학의집, 전남 담양군에는 글을낳는집, 해남군에는 백년재문학의집 등 전국 각지에 작가들을 위한 작업실이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누구나 창작실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한정된 공간이니 입주 경쟁도 치열하다.
작가들에게 있어서 창작 공간뿐 아니라 차를 나누고 대화를 하면서 서로 영감을 나누는 공간도 소중하다. 재키 베넷은 영국 작가들의 정원을 소개하는 책을 냈다. ‘작가들의 정원’이라는 이 책에는 시인 루퍼트 브룩의 그랜체스터도 소개되어 있다. 이곳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는지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해 여름에 드디어 영국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비용을 각자가 부담하는 합리적이지만 조금은 비인간적인 듯한 가족여행이었다. 내가 영국 여행에 동의한 이유는 참 소박한 것이었다. 바로 베넷의 책에서 본 케임브리지대학 근처의 그랜체스터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더 오처드 티 가든’이라는 카페가 있다. 시인 루퍼트 브룩을 비롯하여 소설가인 에드워드 포스터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 바이런, 밀턴 등에게 사랑받았다는 이 공간은 1897년에 오픈한 아주 오래된 카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