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가 총기 피격으로 사망해 일본 열도가 큰 충격에 빠졌다. 여야를 불문한 정치권은 물론 경제계, 일반 시민까지 용납할 수 없는 만행에 분노를 표시했다.
◆피격 5시간33분 만에 절명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심장 마사지 등 응급조치가 이뤄지는 와중에 “의사가 없느냐”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베 전 총리는 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한 뒤 헬기로 옮겨져 오후 12시20분 사건 현장에서 21㎞ 떨어진 나라현립의과대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던 중 끝내 절명했다.
◆여야 정치인 테러행위 규탄
일본은 큰 충격에 빠졌다. 10일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둔 상황임에도 여야 주요 정치인은 유세를 중단하고 테러행위를 규탄했다.
야마가타(山形)현 사가에(寒河江)시에서 유세 중 보고를 받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헬기를 이용해 급히 도쿄로 돌아오면서 각지에서 유세 중이던 각료들도 소집했다. 입헌민주당 이즈미 겐타(泉健太) 대표, 마쓰이 이치로(松井一郎) 일본유신회 대표 등도 가두연설을 중지했다. 시민 불안도 커져 도쿄의 한 50대 여성은 요미우리신문에 “오싹하다. 이런 일로 세상이 불안해질까 봐 무섭다”고 말했다.
◆반한(反韓) 주도로 한국과는 악연
아베 전 총리는 1·2차 집권 합쳐 일본의 최장수(8년9개월) 총리이자 총리 퇴임 이후에도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을 이끌며 상왕으로 군림한 일본 우익의 구심점이었다.
1993년 야마구치(山口)현에서 중의원(하원) 의원으로 당선됐다. 2006년 52세에 전후 최연소 총리로 취임했으나 1년 만에 퇴진했다. 5년 후 2012년 재집권에 성공해 2020년 건강 문제로 사임할 때까지 1강(强) 독주 체제를 유지했다.
재임 중 쌓은 영향력은 퇴임 후에도 유지돼 스스로 필생의 업이라고 강조한 개헌에 매달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군사적 팽창 등으로 일본 국민의 안보 의식이 전에 없이 높아진 지금을 개헌 적기로 여기고 이번 선거에서 자위대의 헌법 명시 등을 골자로 한 개헌을 앞장서 주장했다. 국내총생산(GDP)의 1% 수준인 방위비를 2%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이끌었다.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이끌며 한국과 극한 대립을 촉발했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일본군위안부 문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등으로 재임 중 한국 정부와 정면으로 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