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성격검사처럼 조사하듯 나오는 질문에 하나하나 답하며 클릭을 이어간 끝에 전시장 벽면 대형 화면에 결과가 나왔다. ‘연기. 세상은 무대이며 모든 사람은 그저 무대에 등장했다 퇴장하는 연기자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의외의 결과에 놀라움도 잠시, 다음 설명을 읽어 내려가보니 이내 고개가 끄덕여진다. ‘실용적이고 창조적이며 여럿이 할 수 있는 차분한 정신적 활동을 원하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취미는 연기입니다. 연기는 꼭 직업적 수단으로 삼기 위해서만 하는 활동이 아닙니다! 자신감을 심어주고 무대에서 말하는 연습을 해주며 자세와 발성도 좋아지는 훌륭한 취미입니다. 지자체의 시민대학에서 연극반을 수강해보세요!’
부산시립미술관의 ‘나는 미술관에 ○○하러 간다’ 전시장. 선우훈 작가의 디지털드로잉 및 인터랙티브 웹사이트 작품 ‘시험시간’은 관객 참여형 작품이다. 관람객 각자가 적성검사나 성격검사 하듯 선우훈 작가가 설계해놓은 질문에 답하다보면, 내게 딱 맞는 여가활동을 알려준다. 자기만의 답을 받아든 관람객들은 ‘이런 것도 여가가 될 수 있구나’,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네’ 하는 표정으로 깨알같은 재미를 즐긴다. 화면에는 참여한 관람객들이 받아든 결과가 차곡차곡 누적돼 연기 581명, 미식 1009명, 요리 1358명, 역사 공부 1776명, 버드워칭(새 관찰) 280명, 양봉 1614명 등 약 70개 취미와 통계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된다.
전시는 시의적절한 문제의식과 다양한 흥미를 충족시키는 작품, 알찬 프로그램에 높은 시민 참여도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췄다. 전시에는 여가를 둘러싼 현상과 추이를 다채로운 방식으로 제시하는 작품들이 출품됐고, 부산의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선우훈과 옵티컬레이스를 비롯해 안은미, 일상의실천, 조영주, 김세진, 윤필남, 이한수, 전소정, 제니퍼 스타인캠프, 짐 다인 등 13인(팀)의 작품이 관람객을 맞는다. 하지만 전시 핵심은 작품이 아니라 활동이다. 관람객이 작품과 호흡하며 전시장에서 벌이는 활동은 배움클럽, 명상클럽, 드로잉 클럽 등 5개 클럽 틀거리 안에서 진행되는 관객 참여 프로그램은 약 100차례에 달한다. 전시 제목 속 ‘○○’라는 빈칸을 상상하고 채워보도록 유도한다. 미술관에 ‘관람’하러 간다는 통념과 제한을 넘어, ‘요가’하러 간다, ‘체조’하러 간다, ‘명상’하러 간다, ‘숨쉬러’ 간다, ‘춤추러’간다 등으로 빈칸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김종학의 회화 ‘바다’ 앞에서 매트를 깔고 요가를 하거나, 이우환의 조각 및 설치작품 ‘관계항-침묵A’(2015) 앞에 방석을 놓고 명상에 빠져든다. 안은미의 영상 및 설치 ‘자화자찬’ 속에서 춤을 출 수도 있다.
황서미 학예사는 “동시대 미술관이 다양한 경험을 나누는 사회적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점과 동시에 여가에 주목하면서, 미술관만의 대안적 여가를 제공하는 프로그램형 전시다. 미술관이 양방향 소통공간이 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기획했다”며 “문지영 작가가 직접 강사로 나서는 드로잉 클럽이 인기”라고 전했다.
서울시청 앞 프라자 호텔에 방을 잡고 광화문 시위를 여가 삼는다는 어르신들에게, 스마트폰의 노예가 돼 휴대폰을 만지작거리지 않으면 잠들지 못하게 된 직장인들에게, 유튜브 동영상이 아니면 아무것도 해독할 줄 모르는 어린이들에게 부디 다른 여가 활동이 있다면 정말로 얼마나 좋을까. 삶의 질은 더 높아질 것은 물론, 사회는 한층 성숙해질 것이다. 기혜경 관장은 “100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여가 시간을 어떻게 잘 보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전 세대에게 주어진 문제”라고 했다. 10월16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