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콘크리트 벽에 나지막이 걸려 있는 직사각형 나무 틀 형태의 조각들이 걸려 있다. 마음에 창이 난 듯, 작품은 관람객을 차분한 호흡으로 이끈다. 작품은 지하에 위치한 전시장, 땅속 벽에 뚫린 숨구멍 같다.
중견 조각가 나점수(사진)의 개인전 ‘무명(無名) - 정신의 위치’가 서을 종로구 통의동 아트스페이스3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장에는 신작을 포함한 그의 나무조각 작품 약 20점이 설치됐다.
그는 끌이나 톱 등 목수들이 쓰는 각종 도구로 나무에 홈을 파내 추상조각 작품들을 만든다. 특히 나무가 자연스럽게 스스로 갈라진 부분을 남겨두고 주변을 파내, 나무의 갈라짐이 부각되게 양각되게 만든 작품(‘무명 - 정신의 위치·2020)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 ‘인생작’으로 꼽는다. 강하면서도 약한 나무는 조각하는 동안 잘못 건드렸다가는 전체가 예기치 않게 쫙 갈라져 조각 전체를 망치게 된다. 나뭇결을 이해해야하고, 밀도에 예민해야 하며, 약한 부분을 배려해야만 한다. 그에 맞춰 조각하는 손과 몸의 속도, 압력을 조절해야 한다. “약함을 배려하지 않으면 전체가 깨져버립니다. 마치 사회 공동체와도 같지요. 조각이 삶과 닮아있습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 말이다. 그는 나무에서 세상과 삶을 본다.
조각 소재를 나무로 삼은 것에서부터, 반복적으로 홈을 파는 수행적 행위까지, 자기만의 생각과 의미를 키워왔다. 깊어진 사유를 입 밖으로 꺼낼 때마다 철학하는 예술가 면모가 엿보인다. “조각은 문맹자가 읽는 글과 같아요. 나무 갈라짐 안에는 사계절이 있어 매력적인 소재로 다가왔죠. 나무 뒤틀림은 그러면서도 예상 가능해요. 뒤틀리는 데 신뢰가 있죠. 추상조각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건데, 이게 뭘까 생각해보게 하는 것, 10분이고 20분이고 그 작품 앞에서 사유하도록 일으키는 것, 그렇게 ‘괄호’를 친 어떤 것이 예술이고 철학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