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146개국 중 26위 대만, 4년째 꾸준히 상승세
15일 유엔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대만의 행복지수는 6.512점으로 전체 146개국 중 26위였다. 중국(72위·5.585점)은 물론 일본(54위·6.039점), 한국(59위·5.935점)보다 훨씬 앞선다. 올해 갑자기 달라진 건 아니다. 2018년 이후 4년째 이런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과 대만은 201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비슷했다. 2013년 행복보고서에서 한국과 대만이 둘 다 행복지수 6.2점대로 세계 40위권이었다. 그러나 이후 두 나라는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한국은 행복지수가 크게 떨어져 순위가 내려간 반면 대만은 지수와 순위가 계속 상승세를 탔다.
◆코로나19 방역 성공과 사회통합·자유 확대 등 영향
국회미래연구원은 대만 국민의 행복을 가져온 원인을 3가지로 추정했다. 생활수준 향상과 사회적 지지 상승 그리고 스스로 삶을 선택할 자유의 증가다.
지난 2년간 대만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더믹(대유행)에도 탁월한 수출 실적을 뽐냈다. 2020년과 2021년 경제성장률을 보면 한국은 -0.9%와 4.0%였는데 대만은 같은 기간 3.1%, 6.28%를 기록했다. 2010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였다. 이 같은 성장 배경엔 차이잉원 총통의 기술중시 친기업 정책도 효과를 냈다고 연구원은 분석했다. 반도체 산업에 각종 인센티브 패키지를 제공하면서 중국 등 해외로 나갔던 대만 기업들의 국내 복귀를 유도했고,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기업 투자도 이뤄냈다.
코로나19 방역 국면에서 정부 신뢰가 상승한 것도 국민 행복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만은 코로나19 초기 방역 우수국으로 손꼽혔다. 대만은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경험에서 비롯한 신속한 방역 대응을 실시했다. 2019년 12월 31일부터 중국 우한 입국자들을 상대로 엄격한 바이러스 검사를 펼쳤고, 감염 확산에 대비해 마스크 등 보호장비 생산을 늘렸다. 대만은 과학과 민주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는데, 코로나 차단을 위한 선제 조치·단계적 방역·과학기술 활용으로 구현했다. 민주는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정치 리더십이 솔선수범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차단했다. 유엔 행복보고서는 “코로나19 관련 엄격한 정부 정책이 감염병 통제에 효과적일 뿐 아니라 감염 확산으로 인해 국민의 행복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지난 두 달간 하루 평균 5만명의 신규확진자가 발생하는 등 오미크론 변이가 빠르게 전파되고 있어서 내년 조사에서도 현재와 같은 행복도를 유지할지는 미지수다.
보고서는 대만이 사회개혁을 통한 사회통합과 자유 확대 정책을 꾸준하게 펼친 것도 높은 행복감에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공평을 실현하라는 청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대만은 최저임금·육아수당 인상 등 정책을 펼쳤다. 젠더 이슈와 소수자 등에서도 개방적인 태도로 시민들의 사회적 자유를 확대했다. 대만은 2019년 5월 아시아에선 처음으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보고서는 대만이 밖으로 중국과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내부의 민주주의와 자유 실현을 강조한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2021년 미국 프리덤하우스가 발표한 세계자유지수에 따르면 대만의 자유지수는 세계 7위에 올라 있다. 자유지수는 정치적 권리, 시민의 자유, 인권, 종교적 자유, 언론 자유 등을 평가한다. 지난 2월에는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매긴 ‘2021년 민주주의 지수’에서 세계에서 8번째로 강력한 민주주의 국가로 선정됐다.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세계일보 통화에서 “경제 수준이 일정 정도 올라간 국가에서는 사회적인 요소가 개인 행복에 중요하게 영향을 끼친다”며 “모든 사람은 잠깐 대세이고 전부 소수자다. 다수의 횡포가 있는 사회에서는 평균적으로 행복감을 느끼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행복은 韓 미래사회가 고려해야할 핵심 키워드”
2018년 문을 연 국회미래연구원은 그동안 특정 정파에 치우치지 않고 미래 환경 변화를 예측 분석해 국가 중장기 발전 전략을 세우는 역할을 했다. 그 일환으로 올해부터는 ‘행복’ 등 국민 삶의 질과 관련한 연구에 무게중심을 두기 시작했다.
15일 세계일보와 만난 허종호 국회미래연구원 삶의질그룹 삶의질데이터센터장은 “과거 경제개발 우선주의로 효율성을 제1의 덕목으로 압축 성장한 덕분에 세계 10위 경제대국이 됐는데 국민이 체감하는 행복이나 삶의 질은 그만큼 성취하지 못했다”면서 “행복은 한국의 미래 사회가 반드시 고려해야 할 핵심 키워드”라고 당위성을 설명했다.
허 센터장은 국회미래연구원이 이번에 새로 발간한 국민행복포커스 ‘대만의 행복수준 상승이 주는 시사점’ 보고서를 직접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격월간 발행 예정이다. 첫 회를 대만 연구로 시작한 이유에 대해 그는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와 비슷하고 맞닿은 것이 많았고, 한때는 한국과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고 불릴 만큼 경제 발전을 했지만 그 뒤로는 우리나라가 월등히 앞서나갔는데 행복지수에서 갑자기 벌어지는 것을 발견했다”면서 “어떤 점으로 인해서 두 나라는 비슷한 역사·경제·사회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차이가 났는지를 살펴보고 싶었다. 그 지점이 우리나라가 달려가기만 하다가 뭔가를 놓친 지점은 아닐까 싶었다”고 밝혔다.
허 센터장은 이번 연구를 진행하면서 대만의 사회적 특성에 눈길이 갔다고 했다. 그는 “대만이 사회적 지지, 관용, 삶에서 선택의 자유라는 점에서 한국보다 높게 나왔다”며 “이는 사회적인 특성, 즉 다양성의 존중, 촘촘한 사회적 관계 및 두터운 사회적 안전망 등이 한국과 행복 수준에 있어서 차이를 가져온 결정적인 원인이 아닌가라고 생각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책적인 측면만 기술하다 보니 민족성 등을 보고서에 쓰진 않았지만 대만 사람들은 겉치레보다는 내실을 중시하는 성향이 있다”며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중심의 안정적인 경제구조를 구축한 점이나 쑨원의 삼민주의 사상하에 일찍이 소작을 금하는 토지개혁으로 부의 균등한 분배가 이루어졌고 그러한 평등을 추구하는 사상이 자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과 대만은 모두 수년 전 청년들이 자국의 미래를 암울하게 전망했다. 하지만 최근 나온 국가별 통계를 비교해보면 대만 사회는 청년들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허 센터장은 “파편화된 사회에서 살다 보니 한국인은 내가 잘하고 있나 끊임없이 비교해야 정체성을 확인받을 수 있고 내면이나 실속보다는 외면과 겉치레를 중시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며 “상대방을 경쟁자보다는 이웃과 동료로 상생하게 만들고, 내가 실패해도 사회가 나를 지지해준다는 안도감이 있기까지는 한국인의 행복수준은 의미 있는 상승이 일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