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권성동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이준석 대표의 ‘당원권 6개월 정지’에 따른 당내 혼란상 수습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12일 파악됐다. ‘권성동 직무대행’ 체제에 ‘윤심’(尹心: 윤 대통령 의중)이 실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로써 권 직무대행은 당권과 원내사령탑을 동시에 거머쥔 명실상부한 ‘원톱’에 올라 차기 당권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 다만 안철수 의원 등 차기 당권 주자들이 세 불리기로 ‘권성동 체제’에 맞불을 놓으면서 당권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윤리위원이었던 유상범 의원이 지난 11일 당내 초선의원 모임 도중 ‘성 상납 의혹’을 받는 이 대표에 대한 추가 징계와 최고위원 사퇴 후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 가능성을 언급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날 복수의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윤 대통령과 권 직무대행은 지난 10일 서울 모처에서 만찬을 함께하며 이 대표 징계에 따른 ‘리더십 공백’ 사태 수습 방안을 논의했다. 권 직무대행은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에게 당헌·당규상 자신의 직무대행 체제로 당이 운영되는 게 맞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회동에는 이철규·윤한홍 의원 등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의원들이 배석했으며 장제원 의원은 불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국민의힘은 다음 날 초선·재선·중진 등 선수별 의원 모임과 의원총회를 열고 직무대행 체제를 추인했다. 당초 ‘포스트 이준석 체제’에 대한 각종 시나리오가 난무하며 국민의힘이 ‘윤리위 후폭풍’에 휩쓸릴 것으로 전망됐지만, 권 직무대행을 중심으로 속전속결로 정리가 됐다. 이런 가운데 윤 대통령과 권 직무대행의 회동 사실이 알려지면서 권 직무대행 체제 구축에 ‘윤심’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다만 당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직무대행 체제가 아닌 조기 전당대회 개최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윤 대통령이 이 대표의 당원권 정지는 당대표 ‘궐위’가 아닌 ‘사고’라 전당대회 개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권 직무대행의 설명을 듣고 입장을 바꿨다는 것이다. 오히려 대표적인 ‘윤핵관’인 장 의원이 직무대행 체제를 추인한 의총에 불참한 게 ‘윤심’과 관련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국민의힘 소속 한 중진의원은 이날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윤 대통령이 직무대행 체제를 승인했다면 당헌·당규상 그게 맞으니 했을 뿐이지, ‘윤심’이 실렸다고 보긴 어렵다”며 “직무대행 체제가 길어지면 리스크가 커질 수 있어 조기 전당대회를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권 직무대행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과의 비공개 대화 내용에 대해서는 제가 확인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또 다른 유력 당권 주자인 안 의원도 이날 자신이 주도하는 ‘민·당·정’ 정책 토론회의 첫 행사를 열고 세력화에 시동을 걸었다. 토론회엔 권 직무대행 등 당 지도부와 40명 안팎의 의원들이 참석해 ‘정책의원총회’를 방불케 했다. 당권 주자로 꼽히는 김기현 의원도 13일 자신이 주도하는 공부 모임 ‘새미래’의 두 번째 모임을 열고 세몰이에 나선다.
한편, MBC가 이날 유튜브에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유 의원은 최형두 의원과 마이크가 꺼진 줄 알고 이 대표의 징계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유 의원은 “(직무대행 체제에서 이 대표가) 기소되면 다시 징계해야 된다”며 “수사 결과에서 성 상납이 있었다고 인정되면 어쩔 것인가”라고 했다. 유 의원 측은 “사적 견해를 나눈 것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李 빠진’ 혁신위… 權 “위축될 이유 없다” 엄호
당원권 6개월 정지 중징계를 받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당권 복귀 여부가 불투명해지면서 위기를 맞은 듯했던 당 혁신위원회가 윤석열 대통령과 당 지지율 동반 하락이라는 ‘악재’ 속에서 활로를 되찾는 모습이다. 집권 두 달 만에 당권 다툼과 리더십 부재로 민심이 악화하자 당 전반의 혁신 필요성이 대두되면서다. 권성동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12일 “당내 상황에 위축될 이유가 전혀 없다”며 혁신위를 엄호했다.
혁신위는 이날 국회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소속 의원·당협위원장을 대상으로 진행할 혁신 방안 설문조사 문항을 검토했다. 원래 전날 열릴 예정이었는데, 이 대표 징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의원총회가 소집돼 하루 늦춰졌다.
최재형 혁신위원장은 회의에서 경제위기 속에 당 내부 사정으로 혼란을 겪은 점과 관련해 “국민께 송구스럽기 짝이 없다”면서도 “다행히도 당헌·당규에 따라 권 원내대표가 당대표 직무대행을 하는 것으로 지도부 공백이 메워졌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앞으로 뼈를 깎는 각오로 새롭게 변화하지 않으면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 모르고, 우리 당이 수행해야 될 국정에 관해서도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이럴 때일수록 혁신위가 정말 당의 새로운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 그리고 좋은 혁신안을 도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새삼 깨닫게 된다”고 했다. 혁신위 존폐를 둘러싼 당내 뒷말을 일축한 것이다.
권 직무대행도 “혁신위는 당 공식기구인 최고위원회의 의결을 거친 공식기구”라며 최 위원장에게 힘을 실었다. 권 직무대행은 “진짜 민생정당, 수권정당으로 국민 신뢰를 받으려면 혁신하고 또 혁신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그 차원에서 당 혁신을 위해 애써 주는 최 위원장을 비롯해 동료 의원, 특히 외부 민간위원들께 고맙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나아가 권 직무대행은 “국회의원이 되기 전부터 공정과 정의의 대명사로 국민께 각인된 분”이라며 최 위원장을 한껏 치켜세웠다.
혁신위는 이날 인재·민생·당원 소위원회에 각각 혁신위원들을 배치하는 등 업무분장을 하고 활동을 본격화했다. 검토를 마친 설문 문항도 확정해 이르면 이번 주 중 당 소속 현역 의원 등에게 발송할 예정이다.
혁신위는 출범 초기 이 대표의 ‘사조직’으로 낙인찍히는 등 친윤(친윤석열)계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감수해야 했다. 특히 이 대표와 대립해 온 배현진 최고위원은 이 대표에게 ‘혁신위가 자기 정치 수단이냐’는 취지로 직격탄을 날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민생경제 악화 속에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상대로 ‘실력 발휘’를 못하는 와중에 당권 다툼을 한다는 비판 여론까지 조성되자 공교롭게도 혁신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혁신위도 덩달아 활로를 찾은 모양새다.
다만 이 대표 사퇴로 지도체제 변화가 불가피해질 경우 당권 다툼은 다시 불붙고, 혁신위 존립 여부도 재차 도마 위에 오를 가능성이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