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의 보행자 보호 의무를 강화한 도로교통법 일부 개정 법률안 시행 첫날인 지난 12일 낮 12시10분쯤 서울 광진구의 A초등학교 앞 도로(너비 5m·길이 160여m)에 승용차 1대가 등장했다. 감속 기미 없이 학교 정문 앞과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1개소를 무시하듯 브레이크 한번 밟지 않은 채 쌩하니 지나쳤다. 이어 맞은편 택시 1대도 횡단보도 앞에서 일시 정지하지 않은 채 반대편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초등학교 정문과 횡단보도 지났는데도… 브레이크 등은 캄캄했다
위험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어린이의 교통안전을 확보하자는 법안의 취지가 무색한 현장이었다. 범칙금 6만원(승용차 기준)과 벌점 20점이 부과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에 따르면 A초교가 포함된 스쿨존에서는 2020년에 2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50대 운전자가 몰던 승용차가 정문 인근에서 9세 아동을 치어 경상을 입혔고, 정문에서 직선거리로 약 180m 떨어진 지점에서는 20대 남성이 몰던 차와 12세 어린이의 자전거가 충돌해 어린이가 다쳤다.
50대 운전자가 몰던 화물차가 8세 아동을 치어 중상을 입힌 사고를 포함해 2019년에만 3건의 사고가 B초교 스쿨존에서 발생했다. 이를 근거로 운전자의 준법 의식을 지켜보기 위해 A·B초교를 선택했으며, 살펴본 결과는 드러난 대로다.
◆오가는 차량 없던 초등학교 하굣길… 알고 보니 ‘아마존’
서울 구로구 C초등학교 스쿨존을 취재하던 중 이 학교의 담장에서 ‘아마존’이라는 다소 생소한 명칭의 안내판이 눈에 띄었다. 2020년 이곳에서 어린이 피해 사고 2건이 발생한 점을 토대로 하굣길 상황을 살피던 중 이상하리만큼 차가 한 대도 지나지 않아 자세한 이유를 확인하던 중이었다.
아마존은 ‘아이들이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는 공간(ZONE)’의 줄임말로 10년 전인 2012년 서울시가 처음 도입한 안전환경 조성 사업이다. 스쿨존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개념이며, 아이들의 교통안전과 함께 폐쇄회로(CC)TV 통합 관제 시스템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방범도 책임진다. 특히 현행법(시속 30㎞)보다 더 낮은 시속 20㎞ 이하로 통행속도 제한을 대폭 강화하고 등·하굣길 시간대는 차량 통행을 막아 어린이 교통사고를 원천 예방한다. 은평구 B초교도 ‘아마존’ 덕택에 등교 시간에 차량 통제가 이뤄졌다.
C초교 재학생들의 하굣길 교통안전을 지도하던 학교 보안관은 “오후에는 저학년의 하교가 시작하는 낮 12시쯤부터 6학년 하교가 끝나는 오후 3시까지 아마존을 운영한다”며 “주민센터에서 별도 인력이 나와 차량의 출입을 통제·안내한다”고 설명했다.
아마존의 존재를 모르는 운전자 탓에 통제에 따른 말다툼도 간혹 있다고도 귀띔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아마존 관리 주체는 자치구이며, 구로·성북구와 함께 종로구 등의 몇몇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