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14일 한국은행이 전날 사상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대폭 인상한 것과 관련해 “금리 인상은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지만 그 부담이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돼서는 안 될 것”이라며 “정부는 금융자원을 충분히 활용해서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금융부문 민생안정 방안을 발표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중구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서 주재한 제2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금융위로부터 금리 인상의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과 주택 구입자, 청년 등의 현황 보고를 받고, 이들의 상환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정부는 투자 실패에 시달리는 청년층과 서민층을 겨냥해선 9월 하순까지 신용회복위원회에 신속채무조정 특례 프로그램을 신설해 1년간 한시적으로 운영한다. 대상에 선정되면 소득, 재산을 고려한 채무 과중 정도에 따라 이자를 30∼50% 감면받을 수 있다. 다만 ‘부동산 영끌족’ 등에게 혜택을 주는 점에서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자영업자, 소상공인, 서민 등 어려운 계층의 채무조정과 금융지원은 우리 사회의 선별적 금융복지이자 안전망”이라며 “정부가 선제적으로 지원하지 않는다면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가 안고 가야 할 사회적 비용은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2금융권 대출 17%↑… ‘영끌’ ‘빚투’ 2030 벼랑 끝 몰려
정부는 14일 ‘금융부문 민생안정 과제 추진현황 및 계획’을 발표하면서 가계·기업대출 및 취약부채 현황과 최근 금융환경 변화에 따른 민생 영향에 대한 분석 결과도 공개했다. 정부는 금융지원이 필요한 계층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대출이 급증한 소상공인·자영업자 외에도 이례적으로 주식·가상자산·주택 등에 투자한 20·30세대를 꼽았다. 일각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청년층이 등을 돌리자 정부 차원의 맞춤형 대책을 내놓은 것 아니냐는 해석을 하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위기 대응과정에서 가계와 기업의 민간부채가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장·기준금리가 빠르게 상승한 결과, 가계부채의 대출이자와 기업부채의 상환능력 악화가 주요 위험요인이라고 진단했다. 지난해 말 기준 가계부채 규모는 1860조원, 기업부채 규모는 2355조원에 달한다.
정부는 이런 금융환경 변화가 민생에 끼치는 영향으로 △자영업자·소상공인 금융애로 현실화 가능성 △주거 관련 가계차주의 금융부담 증가 △주식, 가상자산 등 청년 자산투자자의 투자 손실 확대 △서민 등 취약차주 부실 및 금융접근성 약화 우려를 꼽았다.
정부는 자영업자·소상공인의 경우 연체율이 아직은 양호하다고 진단했다.
금융감독원의 5월 말 국내 은행의 원화 대출 연체율이 한 달 전보다 0.01%포인트 오른 0.24%로 전월 대비 보합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위기 중 매출 부진을 추가대출로 충당하면서 채무부담이 누적되고 있고, 자영업자 등은 변동금리·일시상환·단기대출 비중이 높아 금리 리스크에 취약해 상환유예 조치가 종료되면 언제든지 부실이 드러날 수 있는 상황이다. 2017년 말 554조5000원이었던 개인사업자 보유대출은 올해 3월 말 기준으로 967조7000원으로 불어났다. 여러 금융기관에서 빚을 진 소상공인 다중채무자 역시 2017년 말에는 5만명에 불과했지만 올해 3월 말에는 30만명에 달하는 실정이다.
주거와 관련해서는 금리 상승에 따라 상환부담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2020년 말부터 주택가격 급등기에 소득에 비해 많은 대출을 받는 ‘영끌’로 주택을 구입한 20·30세대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20·30 청년의 주택거래비중(수도권)은 2019∼2020년 상반기까지는 25.2%였지만, 2020년 하반기부터 2021년까지는 30.2%에 달한다. 주택구입 시 대출 등 타인자금 사용 비중도 청년외 계층은 36.4% 정도이지만, 20·30 청년은 56.7%에 이른다. 여기에 만약 금리 상승으로 20·30세대 주택구입이 감소해도 이제는 전세수요가 증가해 전세 부담이 가중될 소지가 있다.
설상가상으로 20·30세대의 경우에는 주식, 가상자산 등 투자손실 확대에 따른 금융위험도 커지고 있다. 저금리 시기에 청년들이 재산 형성 수단으로 저축 대신 돈을 빌려 주식·가상자산 등 위험자산에 투자했는데, 금리 상승 여파로 자산가격이 급속히 조정되면서 상당수 자산투자자가 투자 실패 등으로 경제적·심리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20·30 청년의 신용융자(주요 10개 증권사)는 2020년 6월 말에 1조9000억원대였으나 1년 후에는 3조6000억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서민 등 취약차주의 부실도 위험 수준이다. 정부는 가계대출 중 약 5.0%인 93조원이 금리 상승에 따른 상환능력 악화가 우려되는 부실위험 대출로 추산했다. 정부는 특히 2021년 7월 최고금리 인하(20%)가 시장대출 금리 상승과 맞물리면서 대부업조차 이용하지 못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29세 이하 청년층의 2금융권 가계대출 총액은 26조5587억원으로, 전년 말 대비 17.5% 급증하는 등 청년층의 경우 상황이 심각하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금융사가 책임을 지고 고객인 차주의 신용 상태를 파악하고 도와줄 수 있는 건 도와주고 도와줄 수 없는 건 빨리 신용회복위원회로 넘기든지 선택을 해야 한다”며 “차주 중에 정부 대책에 들어가지 않는 애매한 분야가 있을 수있다. 이것은 금융사가 답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