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월북 논란’ SI 정보 믿을 수 있을까 [박수찬의 軍]

신호정보 수집용 안테나가 하늘을 향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검찰이 서해 공무원 이대준씨 피살사건과 탈북 어민 강제북송 사건을 수사하는 가운데 군 당국이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군이 존재 자체조차 공개를 꺼리는 특수정보(SI·Special Intelligence)가 계속 거론되면서다. 

 

남북이 무력충돌을 벌였을 때마다 논란을 초래했던 SI는 이번 사건에서도 많은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를 두고 SI의 분석과 판단 등에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군 전자정보는 다 안다

 

SI는 북한군 통신을 감청해서 확보한 신호정보(SIGINT·시긴트)로 단편적인 첩보에 해당한다. 첩보들을 모아서 한데 끼워맞추면, 정보를 만들 수 있다. 한미 정보당국의 대북 정보수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SI 수집은 대북 전문 감청부대인 777(쓰리세븐)부대가 수행한다. 777부대는 지상 통신감청시설과 정보수집함, 백두 정찰기 등을 통해 북한에서 발신되는 전자정보를 수집한다. 한국군과 미군이 합동 근무한다. 

 

777이라는 이름은 부대 정식 명칭인 네 자리 숫자를 모두 더하면 마지막 숫자가 7로 끝난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예전에는 부대명이 주기적으로 바뀌었으나, 나중에는 777부대로 정착됐다.

 

777부대의 구체적 활동과 편제 등은 공개된 적이 없다. 다만 전 미국 국가안보국(NSA)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SID 투데이 비밀문서에서 일부나마 그 이면을 엿볼 수 있다.

 

NSA가 조직 내 정보공유 차원에서 작성한 2006년 6월 22일자 SID 투데이 비밀문서에 따르면, NSA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감청기지는 2006년 기준 22곳. 24시간 동안 수집되는 신호정보는 하루에 7만7000분 분량에 달한다. 

 

SID 비밀문서는 “2004년 5월~2006년 2월 수집한 대북 신호정보를 분석한 결과, 북한 내 신호정보의 50%, 북한군 신호정보의 75%를 (777부대가) 감청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어지간한 대북 신호정보는 다 포착할 수 있는 셈이다.

 

정보수집용으로 운용중인 신형 백두정찰기. 세계일보 자료사진

수집된 정보는 한국군 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MIMS·밈스)와 한미연합전구지휘통제체계(CENTRIX-K·센트릭스 케이) 등을 통해 국방정보본부, 한미연합사령부, 합참, 국방부 등에 공급된다.

 

SI는 북한 내부 동향에 대해 상당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전현직 군 관계자들은 말한다. 숙련된 정보요원이 특정 인물을 대상으로 감청을 지속하면 그 사람의 지역, 학력, 경력, 지위, 성격, 취향 등 개인정보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최근 수년간 북한에서 전자장비 사용이 늘어나면서 SI 수집 기회도 넓어지고 있다. 

 

통일부가 지난 2020년 북한연구학회와 현대리서치연구소에 의뢰해 탈북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북한주민 10명 중 4명이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화 내역을 지속적으로 살피면, 내부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를 얻게 된다.

 

주한미군 RC-12X 신호정보정찰기가 착륙을 위해 고도를 낮추며 비행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북한군의 탄도미사일 동향 파악에도 도움이 된다.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쏠 때, 이동식발사차량(TEL)이나 교전통제소 등에서는 고유의 주파수를 지닌 전자적 신호가 미사일 발사를 전후로 다양하게 방출된다. 

 

이를 확인하면 각 단계별 탄도미사일 발사 동향과 관련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문제점도 있다. 수집되는 정보가 급증하면 분석관이 놓치는 정보도 많아진다. 정보 소식통은 “장성택 숙청 이후 수년간 대북 정보가 폭증, 확인을 거치지 못한 채 잊혀진 첩보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SI가 노출돼 정보공백이 발생하는 것도 문제다. 이대준씨 피살사건 당시 SI 내용이 일부 공개되면서 북한군이 통신·암호체계를 변경, 정보당국이 이를 만회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2015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산 세스나 경비행기를 이용하는 사실이 공개된 바 있다. 이후 김 위원장은 세스나 탑승을 중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정보당국은 SI로 김 위원장의 세스나 이용 사실을 확인하면서 동향 파악에 활용했으나,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져 타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주한미군 U-2 정찰기가 고도를 낮추며 착륙을 시도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대준씨 피격사건서 확인해야 할 SI 관련 사항은

 

이대준씨 피격사건에서도 SI는 사건의 의혹을 풀어줄 핵심 요소로 간주되는 모양새다. 감사원 감사나 검찰 수사의 초점도 SI와 관련이 있다.

 

이를 두고 해당 SI의 수집·유통과정에 대한 재확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집된 정보를 선택적으로 유통하거나 과도한 비밀주의 원칙을 적용하면, 사건의 실체적 진실 파악에 제약이 따른다. 

 

정보보고서에 포함된 SI 첩보가 정치적 의도에 따라 ‘취사선택’ 됐다면 정부와 군의 의사결정은 편향될 수밖에 없다. 특정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부각하는 ‘정보선택’이 이뤄지면, 중요한 전제와 가정은 생략되고 결론만 강조된다. 

 

2020년 9월 23일 청와대 관계장관회의 직후 밈스에서 정보가 삭제된 과정도 마찬가지다. 군사정보를 유통하는 플랫폼은 보안 유지를 위해 엄격한 감시와 규정이 적용된다. 

 

주한미군이 사용하는 센트릭스 케이는 ‘정보체계에서 파생된 모든 정보를 보호하고, 접근 인가를 받은 후 필요할 때만 정보에 접근한다’ ‘데이터 소유권자 허가 없이는 정보를 유포, 수정하지 않는다’는 등의 보안 규정이 있다. 

 

신호정보 수집을 위해 설치된 안테나가 하늘을 향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한국군도 이와 유사한 수준의 정보 접근·수정·삭제와 관련된 규정과 감시체계를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군 소식통은 “밈스에 탑재된 정보를 국방정보본부 차원에서 지우는 행위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전했다. 

 

2020년 9월 23~24일 청와대에서 3차례 진행된 회의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확인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사건 당시 서해를 관할했던 제2함대사령부와 해군작전사령부, 합참, 해경 등이 작성한 상황일지와 교신·정보공유 과정도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확인해 밈스에 있었던 정보, 감청부대가 수집한 SI 원본 등과 대조하면 사건 당시 정보 전파 현황 등을 알 수 있다.

 

이대준씨 피격사건 당시 군과 정보당국의 정보 판단 과정에 대한 재검토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사건이 벌어진 장소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북쪽 해상이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감청에 의존해 수집한 SI 외에는 뚜렷한 정보가 없는 셈이다.

 

SI를 통해 모은 첩보들을 끼워 맞추면서 정보를 만들고, 이를 토대로 북한의 의도에 대한 분석을 하는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사건 당시 해경과 군은 월북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하지만 1년 9개월 뒤인 지난달 16일 해경과 군은 실종된 공무원의 월북 의도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분석이 잘못됐다고 인정한 셈이다.

 

서울 서초구 국가정보원 청사 앞에 펜스가 설치되어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군 당국은 ‘사격을 했고 소각했다’는 정황은 명확하다는 입장이다. SI를 토대로 한 정보는 그대로지만, 판단을 내리는 과정에서 일부 미진한 부분이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왜 그런 판단을 내리게 됐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그래야 향후 대북 정보수집과 분석 과정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

 

다만 SI와 군사정보 유통 플랫폼 조사는 대북 정보력 보호 등을 위해 사건의 실체 확인에 국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군 관계자는 “이제는 SI라는 말이 국민이 다 아는 단어가 됐다. 이건 심각한 문제다”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