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새벽 인천 인하대 캠퍼스에서 일어난 재학생 성폭행·사망 사건의 충격이 주말 내내 가시지 않고 있다.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에서 벌어진 강력범죄, 그것도 같은 학교에 다니는 남학생이 ‘준강간치사’ 혐의로 긴급체포 되면서 사건의 여파가 커질 조짐이다.
준강간치사죄는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간음이나 추행을 한 뒤 피해자를 숨지게 했을 때 적용한다. 유죄로 인정되면 무기징역이나 10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17일 인천경찰은 가해 남학생을 구속, 피해자를 고의로 떠밀었을 가능성 등을 조사 중이며 검토 결과에 따라 ‘강간 등 살인’으로 죄명이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다.
국민적 공분이 커지자 이날 대통령실은 “희생자의 명복을 빈다”며 “있을 수 없는 참혹한 일이 일어난 데 대해 말할 수 없을 만큼 애통하고 비통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들끓는 여론의 핵심은 이 참변 자체의 충격에 그치지 않는다. 이 사건을 보도하고 접하는 과정에서 언론, 사회, 학교 등이 또 한번 드러낸 지긋지긋한 성차별적 행태, 마치 남 일 대하는듯한 무심한 태도에 더 큰 문제가 있다고 봐서다.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이번 사건과 같은 일은 근절되기보다 반복되며, 비슷한 형태로 소비되다가 이내 잠잠해질뿐이라는 것을 학습한 효과다.
◆사건의 자극·추상적 감상만 늘어놓는 ‘신파’적 소비 근절해야
이 사건이 ‘남 일’일 수 없는 청년 여성들은 누구보다 이 패턴을 잘 알고 있다. 사건 발생 순간에만 여성이 얼마나 충격적으로 피해를 당했는지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고, 가해자 처벌이나 재발 방지에는 빠르게 관심이 사그라드는 모습. ‘앞날이 창창한’ 가해 남성에게 온갖 이유를 들어 감형해 줄 태세를 갖추는 사회. 희생된 여성도 ‘앞날이 창창한’ 청년이었건만 그의 꿈에는 훨씬 더 무관심한 사회. 너무나 익숙한 양상이다.
똑같이 술을 마셨음에도 남대생의 사망에는 거대한 연민과 추모 물결이 일지만, 여대생의 사망에는 ‘늦게까지 술 마신 게 잘못’·‘최초 발견자 부럽다’ 등의 모욕과 피해자탓이 따라붙는다. ‘한강 의대생 실종사건’과 판이한 이번 사건의 사회적 반응에 실망하고 분노하는 여론이 일각에서 일어난 이유다. “남대생이 술 마시고 사망하자 온 나라가 추모 분위기이더니 여대생이 학교에서 성범죄 피해를 입고 추락사하니 온갖 성희롱과 모욕, 억측이 난무한다”는 것이다. 한강 사건은 사고였지만 범죄 음모론이, 인하대 사건은 범죄였지만 사고일지 모른다는 정반대의 억측이 펼쳐진다는 점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유튜브, 남초 커뮤니티, 대학교 익명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 등에서는 이번 사건이 알려진 후 고인에 대한 2차 가해 수위가 심각한 수준이다. 학교 명예 운운, 여성의 행실 문제삼기, 성적 모욕 발언 등 익히 알려진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공격이 쏟아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추상적인 감상과 두루뭉술한 언어로 점철된 인하대 측의 추도사가 제대로 역풍을 맞았다. 교내에서 재학생이 저지른 강력범죄로 인한 사건이 맞는지 의심스러울만큼 가해자에 대한 언급이나 재발 방지에 대한 의지가 보이지 않아서다.
‘우리 사회에서 그 어떤 폭력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한 문장을 빼면 단순 사고사에 대한 추도사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반 성폭력 활동가 ‘연대자D’는 트위터를 통해 “인하대는 학교 측 책임 인정과 사건에 대한 철저 수사 및 가해자 엄벌 촉구, 나아가 재발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노력 등을 밝혀야 한다”며 “슬프고, 허망하고 운운하지 말라. 남 일인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추모를 앞세워 공동체가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한 책임, 대책 마련 의무 등을 방기함으로써 ‘개인의 일탈’로 마무리짓겠다는 신호”라며 “피해자 가족의 입장을 존중하는 것을 빌미로 책임 및 해결책 마련을 회피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위”라고 덧붙였다.
어찌 보면 관행적이라 할 수 있는 이런 추도사에 청년 여성들이 이토록 반발하기 시작한 것은 더 이상 이 같은 사건을 ‘신파’로 소비하고 끝낼 생각 말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온갖 불순한 시선으로 사건의 자극성은 활용할 대로 다 활용하고서 정작 사태 수습과 재발 방지는 나몰라라 하는 행태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건이 다 벌어지고 나서, 피해 여성이 세상을 뜨고 나서 매번 반복하는 한탄과 안타까움의 표현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부디 편안히 가길 바란다’는 추도사 문구가 정녕 이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더구나 가해자 처벌도 범죄 예방도 여전히 수준 미달인 사회에서 피해자를 향한 이런 쉬운 문장이 얼마나 진정성을 내포할지 학교 측은 진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선정적 묘사·2차 가해 속 여지없이 ‘도구화’ 된 여성의 피해
이번 사건에서도 어김없이, 선정성을 높여 주목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여성은 ‘도구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여성이 피해자가 될 때 선정적 표현으로 조회수 팔이 등에 동원되는 현실은 또 한번 참혹하게 드러났다.
언론은 이 사건 기사 제목에 ‘옷 벗은 채’, ‘탈의한’, ‘나체로’ 등 선정적으로 눈길을 끌기 위한 묘사를 쏟아냈다. 그걸로 모자라 본문에서는 피해자가 발견 당시 어떤 모습이었는지 자세하게 소개했다. 사건의 핵심과 관계 없는 불필요한 정보들이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남발된 측면이 다분하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신문윤리실천요강에 따르면 제3조 보도준칙에서 ‘범죄·폭력·동물학대 등을 보도할 때 선정적·자극적 표현을 사용하거나 저속하게 다뤄서는 안 된다’고 정해놓았지만 유명무실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사건 발생일 오후 3시 기준 포털에 검색된 관련 뉴스를 전수 분석한 결과 수십개 매체가 구체적·선정적 표현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가장 먼저 기사를 쓴 연합뉴스가 “인하대서 여성 옷 벗은 채 피 흘리고 쓰려져” 라고 제목을 달자 다수 언론이 뒤따라 비슷한 표현을 쏟아냈다. 민언련에 따르면 문제적 표현을 가장 많이 보도한 곳은 YTN과 SBS로, YTN은 기사 4건 중 3건에서 ‘나체로’, ‘알몸으로’ 등의 표현을 썼다.
피해자를 ‘여성’, ‘20대 여성’, ‘여대생’ 등으로 표기하면서 가해자를 ‘남성’, ‘20대 남성’, ‘남대생’이라고는 하지 않은 점도 지적됐다. 특히 ‘여대생’ 같은 표현은 성차별적이라고 오랫동안 비판받아 온 단어다. 민언련은 “언론이 ‘클릭 수 장사’를 위해 발견 당시 상황을 선정적으로 묘사한 표현은 물론 ‘여대생’이란 성차별적 언어까지 추가한 보도를 쏟아낸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평했다.
이는 뉴스 기사에서의 ‘성별 표기’ 문제와도 연결된다. 많은 언론의 관행은 남성을 기본형으로 두기에 성별 표기를 하지 않고, 여성에게만 ‘여’ 자를 붙인다. 남성이 기준이고, 여성을 보조적으로 보던 시절 만들어진 성차별적 매뉴얼을 여전히 별 문제의식 없이 쓰고 있다. 2018년 10월 연합뉴스가 ‘여성 차별적 성별 표기를 하지 않겠다’고 결정했지만 수년째 국내 언론 전반에 이와 관련한 특별한 개선은 없다.
관련 문제제기가 처음 이뤄진 것도 2015년 ‘#뉴스기사_남성성별_표기운동’이라는 해시태그 운동을 통해서였다. 이를 보도한 당시 오마이뉴스 기사("강간범은 남자" 말 못하는 미디어의 속사정)에 따르면 “뉴스 기사에서 대개 범죄 피해자로 나오는 여성은 나이와 성별이 특정되지만, 가해자인 남성은 그렇지 않아 범죄의 특성이 가려진다는 것이 운동이 일어난 이유”다. 이후 7년이나 지났지만 시민들의 강력한 요구에 비해 언론의 변화는 너무나 게으른 셈이다.
◆관행 뒤에 숨은 언론의 ‘가해자 감추기’에 거센 비판
남성 기본형 성별 표기 관행은 태생부터가 성차별적이지만 이후의 활용 측면에서도 가랑비에 옷 젖듯 해악을 누적했다. 사건·사고 위주인 뉴스의 성격상 여성만 따로 표시하는 것 자체가 여성의 불행이나 일탈적 행위를 더욱 부각하게 된다. 이는 성차별적 사회·문화를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뉴스 속 여성은 피해자가 되어도 가해자가 되어도 부정적인 의미로 주목받는다. 피해를 입으면 얼마나 잔혹하게 당했는지를, 가해를 하면 얼마나 잔악무도한 짓을 저질렀는지를 ‘여’라는 표기와 함께 강조한다. 전자의 경우 ‘범죄 피해 희생자로서의 여성’ 이미지를 강화해 여성을 무력화하고 공포심을 키운다. 여성의 취약한 사회적 지위, 남성의 공격에 대항하기 힘든 힘의 격차 등을 재확인시키는 것이 여성 보호나 지원을 위한 정책·제도로 잘 이어지지 않을 때, 이런 기사들은 오히려 여성들을 낙담시키고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사회적 약자의 처지를 개선하기는커녕 손발을 묶는 전략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또한 똑같이 가해자이더라도 여성일 때는 폭력성이 강조되고, 남성일 때는 성별 특성이 가려진다. 여성 가해자는 상대적으로 더 ‘악마화’되며, 남성 가해자는 상대적으로 더 감춰지는 상황 속에서 남성의 가해는 심각성이 ‘축소’된다. 심지어 남성의 가해가 훨씬 더 빈번한데도 이렇게 보도되는 것이 온당한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전통적 언론의 시각이자 해명은 이렇다. ‘남성이 가해자가 되는 상황이 더 흔하기 때문에 여성이 가해자라는 사실만으로 희소성, 뉴스 가치가 올라간다’는 것. 수습기자들은 ‘개가 사람을 무는 건 일상이라 기사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기사 거리가 된다’고 배운다. 지금껏 이 원칙 뒤에 근근히 숨어 왔겠지만, 바닥난 성 인지 감수성과 인권의식까지 숨길 수는 없어 보인다.
여성의 불행을 전시하듯 소비하고 안줏거리 삼는 사회에서 ‘남대생이 성폭행을 저질렀다’보다 ‘여대생이 성폭행 당하고 죽었다’가 더 흥행이 잘 되는 제목이기에 이런 선택을 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기에 더더욱 그렇다. 보다 성평등하고 함께 살기 좋은 세상을 위한 언론의 가치는 뒷전에 둔 채 ‘얘기 되고 잘 팔리는’ 이야기라며 달려들고 보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서 언론은 정말 자유로운가. 더 중요하게는 진짜 여성의 입장에서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고 공감하려 했다면 저런 선택을 반복적으로 할 수 있었을까. ‘언론의 성별은 남성’이라는 인식은 바로 이런 식의 무심함이 쌓이며 강화된다.
일부 언론이 쓴 ‘성폭행 거부’라는 표현, 명백히 유죄 혐의로 피의자가 체포된 상황에서 사건을 ‘단순 음주사고’ 취급하며 2016년 만취한 여학생의 추락사를 언급한 사례 등 언론발 논란은 이 한 사건의 보도 안에서도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성폭행 저항’이 아니라 ‘성폭행 거부’ 운운한 데 대한 사회적 지탄이 거세다. ‘거부’의 반댓말은 수락이나 승낙이며, 선택지가 있는 정상적인 상황에서의 제의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강도 거부’, ‘살인 거부’ 같은 말도 있냐”거나 “그럼 성폭행을 수락하란 말이냐”, “‘강간문화’와 성인물에 익숙해져 성관계와 성폭행도 구분 못하는 수준”이라는 등의 비판이 이어졌다.
선정적 묘사를 아무렇지 않게 제목으로 거는 것을 포함해 피해자 입장에 극도로 무신경한 이 모든 보도 행태는 국민의 알권리, 뉴스 가치, 중립 같은 단어를 방패 삼아 여성에 대한 ‘선택적 공감 능력의 상실’을 합리화할 뿐이다. “하루 종일 ‘알몸’이니 ‘나체로 피 흘린 채 발견’이니 하는 헤드라인이 쏟아지는 걸 보며 유족들 마음은 어땠겠냐”는 일부 독자들의 지적을 지금의 언론은 정말 뼈아프게 받아들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