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부사 정언섭, 300년 만에 부산으로 돌아오다

조선 영조시대 동래부사를 지낸 정언섭의 9대 손인 정한식씨가 부산시립박물관에 기증한 ‘어제상훈’(왼쪽), ‘교지’. 부산시 제공

임진왜란 당시 무너진 동래읍성을 개축한 조선 영조시대 동래부사 정언섭(1686~1749)이 300년 만에 부산으로 돌아온다.

 

부산시립박물관은 정언섭의 9대 손자인 정한식씨(70·충북 청주)로부터 정언섭 부사와 동래 정씨 가문 관련 고문서 55점을 기증받았다고 18일 밝혔다.

 

정언섭은 1730년(영조 6년)부터 1733년까지 동래부사를 역임한 조선후기 문신으로, 재임 중 동래읍성(부산시 기념물 제5호)을 성공적으로 개축해 영조의 신임을 얻어 중앙관료로 오랜 기간 활동했다.

 

동래읍성은 임진왜란 이후 140년 동안 방치됐다가 1731년 동래부사로 부임한 정언섭에 의해 이듬해인 1731년 개축된 이후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있다. 읍성 개축에는 동래부의 독자 재원이 투입됐고, 정언섭은 개축 공사를 시작한 지 200여 일 만에 조기 완공했다.

 

이와 같은 성과로 정언섭은 영조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어 충청도 관찰사와 승정원 도승지, 병조·호조·예조참판 등 중요 직책을 역임했다.

 

이번에 박물관이 기증받은 유물은 교지(조선시대 왕의 명령이나 의중을 담은 언사, 또는 왕이 관직 등을 내리는 문서)첩과 시문집 및 편지글을 모은 필적, 사창절목, 동래 정씨 족보 등 55점이다.

 

특히 기증유물 가운데 교지첩과 영조가 지은 시가 수록된 ‘영은어제’를 비롯해 영조가 정언섭에게 하사한 ‘어제상훈’은 그의 인생과 중앙정부에서의 활동 상황, 영조와의 관계를 알려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또 기증유물 가운데 ‘금호상원시첩’과 ‘호암당비명’에서 정언섭의 실제 글씨를 확인할 수 있다. 두 유물에서 보이는 정언섭의 미불(중국 북송시대 서화가)풍 초서체와 한호(조선중기 서예가. 한석봉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풍의 해서체는 유려해 정언섭의 예술적 감각이 뛰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밖에 정언섭의 손자 정양선이 18세기 후반 의금부에 재직할 당시 받은 ‘금오계회도’ 2점과 정언섭 가문 8대 약 250여 년(16~19세기)간 쓴 동래 정씨 정자공파 문중 가족 간의 편지글을 모아 제본한 11책의 서첩도 기증유물 중 하나다.

 

편지글은 한문과 한글로 쓰여 있으며, 조선 후기 친족관계와 사회상 등을 파악할 수 있어 학술적 매우 가치가 높다.

 

기증자인 정한식씨는 “지난 4월 부산 동래구 금강공원 내 할아버지(정언섭)가 세운 ‘임진동래의총’을 찾았을 당시 문화관광해설사로부터 할아버지에 대한 깊은 존경심이 배어 있는 설명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았다”며 “부산시가 할아버지의 업적을 가장 잘 보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 보관 중이던 고문서 전체를 부산시립박물관에 기증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