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복불복’ 예술교육환경 확 바꾸자

문화부로 발령 나서 공연 분야를 담당한 지 넉 달이 됐다. 23년 차 기자이지만 문화부는 처음인 데다 국악·무용·뮤지컬·발레·연극·오페라·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를 맡아야 해 수습기자처럼 좌충우돌하고 있다. 그래도 각종 예술 장르를 접하고 여러 문화예술계 인사를 만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는 맛이 쏠쏠하다. 공연장마다 다르게 풍기는 특유의 냄새도 어느새 친근해졌다. 무엇보다 배우·가수·연주자·무용수 등이 무대 위에서 혼신을 다해 펼쳐 보이는 예술 세계를 보면 감탄과 박수가 절로 나온다. 어느 때보다 힘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시기에도 꾸준히 실력을 연마하며 좋은 작품으로 관객에게 위로와 웃음, 감동을 전하는 예술인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아쉬운 건 취약한 공연시장이다. 장르별 애호가를 제외한 일반 관객 발걸음이 너무 적다. 국내 공연예술시장 규모가 1조원이 안 되고, 그중 절반가량은 뮤지컬 차지라고 한다.

이 때문에 아무리 공들인 작품이라도 대부분 공연 기간이 매우 짧다. 전용 극장이 드물기도 하지만 오래도록 객석을 채울 수가 없으니 당연하다. 팬데믹 이후에도 영화 ‘범죄도시2’가 1000만명 넘는 관객을 기록할 만큼 영화관은 곧잘 가는 사람들이 왜 공연예술 관람은 꺼리는 걸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잘 모르거나 어려워서 보기 부담스럽다’고 여기는 심리적 요인도 크다고 본다. 어려서부터 예술을 교과서로만 접하고 즐겁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것과 무관치 않다. 그러니 어른이 돼서도 공연장 문턱을 쉽게 넘지 못한다. 그 문턱만 넘으면 메마른 세상에서 느끼는 갈증을 해소해 줄 문화예술의 샘이 넘쳐나는데도 말이다.

이강은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얼마 전 인터뷰차 만난 세계 정상급 테너 최원휘 얘기가 와닿았다. 성악가들에게 ‘꿈의 무대’인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메트) 무대에도 섰던 그는 “(우리나라도) 어려서부터 아마추어 음악인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며 독일 오페라 극장에서 활동할 때 경험을 소개했다. “해마다 극장에서 올리는 오페라 중 한두 작품은 어린이를 위한 오페라로 각색을 하는 게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 라인에 1시간 분량으로 짧게 만들어 대극장에서 공연합니다. 그러면 지역 내 모든 학교 학생이 돌아가며 와서 봐요. 그런 경험을 해 본 것과 안 해 본 차이는 크거든요. 성인이 돼서도 문화를 향유할 수 있게 해 주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감 가는 말이다. 중앙·지방 정부와 시·도 교육청이 문화예술단체, 전문가 등과 합심해 예술교육 환경을 확 바꿨으면 한다. 학생들이 지금처럼 어떤 학교나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공연·전시회 관람 등 예술을 가까이할 수 있는 기회를 갖거나 못 갖는 ‘복불복 예술교육’이어선 안 된다. 집안 형편과 무관하게 학생 누구나 부담 없이 교과서 속 예술을 실제 마주해 보는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그렇게 예술적 감수성을 키우게 되면 나중에 취미 활동이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라도 편하게 공연장으로 향할 것이다. 자연스레 시장 저변과 예술인 활동 공간이 확대될 것이고 진정한 문화융성국가로 가는 길도 열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