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항공료, 물가 껑충… “해외도 국내도 갈 곳이 없어요”

베케플레이션에 ‘휴포자’ 속출

각국 빗장 풀려 여행길 열렸는데
경비 부담 커져 계획 포기·연기
국내로 눈 돌려도 렌터카 등 올라
제주도 항공권 가격도 두 배 상승
전문가 “수요 정상화 오래 걸릴 듯”

 

#1. 직장인 박모(29)씨는 이번 여름휴가에 가족과 함께 미국 여행을 떠나려고 계획했다가 최근 마음을 접었다. 비싼 항공권 가격에 환율도 큰 폭으로 오르면서 비용이 부담스러워졌기 때문이다. 부모님과 동생까지 4인 가족의 항공료만 1000만원이 넘는다. 항공권 가격이 조금이라도 떨어지기를 기다렸지만 되레 올라갔다. 현지 숙박비 등의 물가도 부담을 가중시켰다. 박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후 가족들과 함께 해외로 처음 가려고 했는데,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고 했다.
#2. 직장인 조모(27)씨는 지난 3월 코로나19 엔데믹(풍토병화) 전환 이후 친구들이 여름휴가로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것을 보고 거의 매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항공권 가격을 체크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천정부지로 치솟는 항공권 가격에 깜짝 놀랐다.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이 부리던 시기 80만~100만원으로 충분히 구할 수 있었던 스페인 바르셀로나 왕복 항공권은 이젠 200만원이 훌쩍 넘는다. 그는 “엄마와 함께 여행하려고 알아봤지만 항공료에만 400만원을 넘게 지출하게 되더라”며 “해외여행은 내년으로 미루고 올해는 국내로 휴가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각국이 빗장을 잠그며 한동안 갈 수 없었던 해외여행이 가능해졌지만, 연일 지속되는 고유가·고물가 행진으로 여행 계획을 포기하거나 연기하는, 이른바 ‘휴포자’들이 늘고 있다. 여름휴가로 해외여행은 물론 국내여행 경비마저 부담스러워 아예 ‘집콕’을 선택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것. 휴가를 뜻하는 ‘베케이션(Vacation)’과 물가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이 결합된 ‘베케플레이션(Vacaflation)’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18일 통계청의 지난달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국제 항공료는 전년 동월 대비 21.4%, 국내 항공료는 19.5% 올랐다. 여행업계 등에서 보는 여행 경비의 상승 폭 체감은 더 크다. 인천과 런던·파리 왕복 항공권 가격은 직항 기준 과거 140만~200만원에서 최근 180만~350만원까지 올랐으며, 미국 로스앤젤레스 왕복 항공권의 경우 4개월 전 150만원이었던 가격이 이제는 240만∼350만원을 오간다. 항공료가 저렴해 인기를 끌던 방콕도 90만~100만원까지 높아졌고, 신혼부부들이 많이 찾는 하와이 왕복 항공권 가격도 180만~250만원이다.

지난 17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면세점에서 출국자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 뉴스1

40대 김모씨도 최근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여행을 포기했다. 그는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 해제를 비롯해 해외 출입국 과정이 간소화돼 이번엔 해외로 여행을 가려고 했다”면서 “하지만 정작 항공료와 숙박비 등이 너무 올라 계획을 접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국내여행으로 눈길을 돌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국내 항공권 및 숙박 가격도 부담되기는 마찬가지다. 제주도 항공권 가격도 최근 2배 가까이 올랐으며, 고유가 행진이 계속되면서 렌터카 대여 비용 역시 치솟았다. 지난달 국내 단체여행비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31.4%, 승용차 임차료는 28.9%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여행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여행 경비가 너무 올라 도무지 떠날 수 없는 지경이다” 등 토로하는 글이 이어진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항공권을 예약했지만 현지 숙박비 등의 추가 부담이 커져 취소하는 사례도 있다”며 “3년 만에 코로나19 엔데믹이 오고 거리두기가 해제되며 회복하는 모습이었는데, 고물가와 코로나19 재확산 등의 영향으로 다시 주춤하고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여행 수요가 정상화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번 오른 물가는 떨어질 가능성이 크지 않아 고물가가 오래갈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등 국제 정세도 불안해 환율 등도 계속 오를 것”이라면서 “부담이 커진 여행 소비는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