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치식 유머에 얹어진 덮밥문화… 미식과 어우러지다 [김셰프의 씨네퀴진]

광동요리 중 하나인 ‘차사우’ 밥 위에 올려
대중적이고 실패하기 어려운 요리
영화 속 식신으로 등장하는 주성치
소림사서 18동인에 맞아가며 요리배워
일본 라멘의 고기 고명인 ‘차슈’의 기원
빠르고 쉽게 먹을 수 있는 상차림
노동자들이 즐길 수밖에 없었던 미식
칼이 날아다니고 재료가 정갈하게 썰린다. 주인공은 소림사에서 맞아가며 요리를 배운다. 맨손에서 불이 나와 계란 프라이를 하는데 이 영화가 코미디인 걸 알면서도 참 기가 차는 내용들이다. 1996년 개봉한 주성치 감독·주연의 ‘식신’은 그 특유의 B급 웃음 포인트와 연출에 한심하다고 낄낄거리며 보다 자존심 상하게 작은 감동 또한 선사한다.
영화 ‘식신’ 장면

#영화 ‘식신’

영화 ‘식신’은 제목 그대로 음식의 신, 식신에 대한 영화로 주성치 영화의 B급 코미디 감성이 물씬 느껴진다. 주성치 영화 특유의 위트와 스토리 그리고 어이없는 감동까지 느낄 수 있는 홍콩 영화이다. 1996년 개봉한 식신은 그 당시 비디오테이프로 빌려 볼 수가 있었는데 10대 초반의 어린 내게 요리사에 대한 흥미를 물씬 느낄 수 있게 해준 영화였다. 주성치와 항상 함께 영화에 등장하는 오맹달, 막문위 같은 홍콩의 배우들은 마치 꾸준히 흥행하는 아침 드라마의 주연들처럼 말이 통하지 않는 다른 나라 배우들임에도 불구하고 친근하고 익숙하게 다가왔다.



영화는 말 한마디로 외식업계를 들었다 놨다 하는 식신 주성치가 평소의 업보로 인해 동업자들에게 배신을 당한 뒤 쫄딱 망하는 걸로 시작한다. 복수를 위해 중국 본토로 넘어가는데 아이러니하게 중국의 소림사에서 18동인에게 맞아가며 요리를 배워 다시 재기하는 이야기로 20년이 지난 지금 칼럼을 쓰기 위해 다시 보아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연기와 재미가 있는 지루하지 않은 코미디 영화이다.

영화는 물론 개연성이 많이 떨어지고 억지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관객을 웃게 하겠다는 맹목적인 목표가 느껴지는 내용과 뜻하지 않은 감동은 이 영화가 음식 영화 중 내게 지금까지도 최고로 남아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누구나 다 식신이 될 수 있다’는 대사는 아직도 요리를 하는 내 마음속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중요한 가치관 중 하나이다. 요즘 홍콩 영화에서는 사라진 낭만을 느끼고 싶다면 영웅본색, 화양연화, 첨밀밀 같은 동시대의 영화를 추천하고 홍콩 영화 특유의 추억 속웃음을 느끼고 싶다면 주성치의 영화들을 보는 걸 추천한다.

암연소혼반

#요리 명장의 마지막 요리 ‘암연소혼반’

소림사에서 목숨을 걸어가며 요리를 배워왔지만 상대의 권모술수에 대항하기엔 부족하다. 악당과의 요리대결 중 맛있는 냄새 때문에 스님도 담벼락을 넘는다는 불도장을 이기기 위해 매수당한 심사위원에게 해준 요리가 바로 ‘암연소혼반’이다. 이름은 아주 그럴듯한데 모양은 돼지고기 덮밥이다. 주성치가 식신에서 물러나 뒷골목에서 쓰러져 있을 때 그를 유일하게 도와준 길거리 요리사가 해준 덮밥은 그 어떤 최고급 요리보다 그의 마음속 깊이 새겨 있다. 코미디 판타지 영화답게 왼손의 장풍으로 밥을 짓고 오른손에서 나오는 화염으로 계란 프라이를 하는데 정갈하게 담은 그 덮밥 한 그릇이 아직도 내가 추구하고 바라보는 궁극적인 요리의 이상향이 아닐까 싶다. 아, 물론 장풍을 쓰는 것은 빼고 말이다.

간장돼지고기덮밥

#돼지고기 덮밥

주성치가 막문위를 생각하며 만든 ‘암연소혼반’은 홍콩 어디에서도 보기 쉬운 ‘돼지고기조림 덮밥’이다. 광동요리 중 하나인 차사우를 밥 위에 올린 대중적이고 또 어디에서도 맛에 크게 실패하지 않는 요리 중 하나이다. 2년마다 열리는 홍콩 요리대회에 총 4번 정도 출전했는데 그때마다 홍콩의 미식을 즐기며 항상 챙겨 먹던 것이 이 차사우 덮밥이다.

중국 문화권에서는 닭이나 돼지 같은 육류를 간장 양념에 절이거나 발라 갈고리에 꿰어 오랫동안 구운 요리를 차사오라고 하는데 우리가 흔히 많이 들어본 일본 라멘에 올라가는 고기 고명인 ‘차슈’와 기원은 같다. 이를 밥 위에 올려 데치거나 볶은 야채를 함께 올려 주는데 탄수화물·단백질·지방의 균형이 잘 잡혀 있어 한 그릇만 먹어도 속이 든든하다. 덮밥을 먹는 방식이 그렇듯 빠르고 쉽게 먹을 수 있으며 상을 크게 차릴 필요 없이 그릇만 들고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역사가 깊은 패스트푸드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옛날 잠깐의 시간도 아까웠던 노동자들이 즐길 수밖에 없는 미식 아니었을까 싶다.

 

■간장 돼지고기 덮밥 만들기

<재료>

돼지앞다리살 250g, 계란 1알, 쌀밥, 간장 30mL, 미림 15mL, 설탕 15g, 물 15mL, 표고버섯 1개, 청경채 조금, 마늘 2톨, 양파 30g ,기름 조금, 된장 1Ts, 물 2L

<만들기>

① 돼지 앞다리는 된장을 푼 물에 1시간가량 삶아준다. ② 간장, 미림, 설탕, 물, 표고버섯, 다진 마늘을 넣고 살짝 끓여 준 후 삶은 돼지고기에 버무려 졸여준다. ③ 밥 위에 볶은 청경채와 계란 프라이를 넣고 간장에 졸인 앞다리살을 썰어 올려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