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역의 자율형사립고인 장훈고가 일반고 전환을 결정했다. 문재인정부의 ‘자사고 폐지’ 방침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 자사고가 스스로 자사고 지위를 포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21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장훈고는 지난달 29일 자사고 지정 취소 신청서를 제출했다. 장훈고는 신입생 모집의 어려움, 재정 부담 증가 등으로 자사고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훈고는 2020학년도부터 3년 연속 신입생 모집 미달 사태를 겪었다. 특히 올해에는 238명 모집(일반전형)에 109명 지원에 그쳐 경쟁률이 0.46대 1에 불과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장훈고는) 일반고 전환을 통해 학교 환경 개선, 고교학점제 운영 환경 구축, 안정적인 학교 운영 등 발전적 방향을 모색하고자 자사고 지정 취소를 신청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심의 및 청문 절차가 끝나는 대로 교육부 동의를 신청할 계획이다. 교육부 동의가 결정되면 장훈고는 내년부터 일반고로 전환돼 교육감이 학생을 배정하는 방식으로 신입생을 모집하게 된다. 다만 재학생은 졸업할 때까지 계획된 교육과정을 이수한다.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은 25억원을 투입해 기존 재학생의 등록금 감면, 교직원 인건비 등에 사용한다는 방침이다.
서울 지역 자사고 중 일반고로 자발적 전환을 신청한 것은 장훈고가 10번째다. 2012년 동양고에 이어 용문고(2013년), 미림여고·우신고(2016년), 대성고(2019년), 경문고(2020년)가 일반고로 전환했다.
올해에도 동성고·숭문고·한가람고가 잇따라 일반고로 바뀌었다. 특히 숭문고는 한때 자사고 지정 취소를 둘러싸고 서울시교육청과 소송까지 벌였던 곳이다. 2019년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재지정평가 후 서울 8곳 등 10곳의 자사고 지정을 취소하자 해당 학교들은 행정소송을 냈다. 숭문고는 해당 소송에서는 이겼지만 지난해 결국 자사고 지위를 반납했다.
자사고 중 신입생 충원에 어려움을 겪는 학교가 늘고 있어 향후 일반고 전환 사례도 증가할 전망이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서울 지역 자사고 중 전국단위 자사고(하나고)를 제외한 17곳의 2017학년도 경쟁률은 1.7대 1이었으나 올해 1.3대 1로 떨어졌다. 장훈고를 비롯해 △중앙고(0.81대 1) △대광고(0.86대 1) △경희고(0.97대 1)는 모집인원도 채우지 못했다. 한대부고는 308명 모집에 316명 지원, 신일고는 299명 지원에 317명 지원으로 겨우 체면치레를 했다.
자사고 지원이 줄어드는 것은 최근 학교생활부 기록 간소화, 고교 정보 ‘블라인드’ 정책 등으로 대입에서 자사고가 오히려 불리하다는 인식이 크기 때문이다. 또 2019년부터 고교 무상교육이 추진돼 자사고와 일반고의 학비 차이가 더욱 벌어졌고, 문재인정부가 2025년 모든 자사고와 외국어고 등을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도록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한 것도 자사고 기피 요인으로 꼽힌다.
윤석열정부는 자사고 폐지 정책에 반대하는 기조인 데다가 자사고 등 24개교 학교법인이 헌법소원을 청구한 상태여서 자사고 폐지 정책은 뒤집힐 수 있지만,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자사고의 앞날이 불투명하다는 인식이 많다.
입시업계 관계자는 “자사고 학비가 평균 700만원 이상인데 그만큼을 투자할 정도로 장점이 크지 않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며 “자사고 선택이 줄어드는 추세”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