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오프라인 서점 교보문고에는 늘 고객보다 분주한 이들이 있다. 교보문고라고 적힌 앞치마를 두른 이들은 쉴 새 없이 고객들이 살펴본 책들을 정리하고, 책을 찾아달라는 등 각종 민원에 대응한다. 만약 이들의 노고가 없다면 교보문고는 몇십분도 지나지 않아 아수라장이 될지 모른다.
22살에 입사해 올해 7월이면 33년 동안 교보문고에서 책과 함께해온 박미옥 문학인문 파트장은 지난달 22일 기자와 교보문고 강남점에서 만나 자신을 “모든 사람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박 파트장은 그동안 분야별 도서, MD 분류정리, 고객 응대, 판매, 단골고객 관리, 마케팅 등 서점의 전반적인 업무를 모두 경험했다. 광화문점에서 일하다 지난 4월 강남점 문학인문 분야 파트장으로 옮겼다. 강남점에 파트장은 그를 포함해 총 3명이다.
“제가 전주 출신이에요. 우연히 20살 때 서울에 와서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가게 됐는데요. 그때만 해도 미술 전공이었으니 졸업작품전 준비를 위해 도예물품 구입겸 인사동을 방문했다가, 미술책도 좀 찾아볼까 하고 교보문고를 찾았었죠. 그런데 서점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규모가 큰 거에요. 약간 별천지처럼… 지방은 서점도 조그마하잖아요. 그때가 87년도였는데 교보문고가 단일 면적으로 제일 큰 규모였어요. 아케이드처럼 서점만 있는 게 아니고 식당, 우체국, 빵집, 일식집도 있었죠. 여기 너무 좋다. 그렇게 느꼈던 것 같아요. 그리고나서 2년 뒤에 입사하게 됐죠.”
자신이 처음 이 일을 시작했던 20대를 떠올리는 박 파트장 표정은 천진하게 보였다. 80년대 광화문 교보문고는 종합 쇼핑몰 같은 형태로 크고 넓은 공간에 각종 매장이 함께 있는 공간이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에게 마치 ‘백화점’ 같은 서울의 대형서점은 충격적일만 했다. 교보문고는 당시 종로서적, 동화서적 등과 함께 대표 대형서점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90년대 들어 서점 중심으로 리뉴얼하면서 실매장면적만 1800평이 넘게 확장했다. 당시 교보문고 서가의 총 길이는 24.7㎞에 달하며 약 15만종 150만권의 서적이 진열돼있었다. 현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는 30만종 45만권이 진열돼있다.
“그때는 인문 서적하면 80% 이상이 한문이었어요. 한문을 잘 몰랐던 저에게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였죠. 이것 때문에 힘들어서 밤에 집에 가서 많이 울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그림으로 그린 것처럼 계속 보다 보니 외워지더군요. 요즘 후배들이 모르는 한문을 읽어주면 감탄하는 걸 보고 그때 한문 공부를 해놓은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요. 또 요즘은 책을 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만, 그때는 선배들한테 책 어디있어요라고 물어보는 게 다였죠. 그러면 선배들이 몇 번째 서가 몇 번째 줄 이렇게 바로 말하는 게 참 신기했는데…시간 지나고 나니 나도 모르게 어디에 무슨 책이 있더라 하고 기억하게 되더군요. 회사에서 책 찾기 대회도 하고 하던 시절이었어요. 2분 안에 리스트 주고 10개 책 찾아오기 이런 식으로요.”
직원들이 머릿속에 검색시스템을 탑재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당시는 책을 빨리 기억해내고 찾아오는 게 우수사원의 소양이었다.
“단골고객도 많았죠. 전문서적파트는 희귀한 책도 많이 취급해서 교수님들 등 전문가들을 많이 알게 되요. 그중 한 분이 기억에 남는데, 매일 아침 출근하시던 젠틀한 양복 입은 신사셨어요. 인문 신간코너만 한참보다 몇십만원씩 현금으로 책을 한뭉치씩 사가셨는데 아마 회사 인근으로 출근하시는 정부부처 공무원이셨던 거 같아요. 십몇년 후 강남점 있다가 다시 2008년 광화문 갔는데 이제 안 오신다고 하더군요. 그러다 우연히 전철역에서 뵀는데 많이 노쇠하신 모습에 안타까웠어요. 저한테 안부 물어보시고 연락처도 주고받았는데… 작년 초에 매장에 전화 한 통이 왔어요. 그분 아들인데 저랑 통화하고 싶다고. 알고 보니 돌아가시면서 제 안부를 물으셨다고 하더군요.”
박 파트장은 자주 찾아주던 오래된 단골손님의 부고를 듣자 눈시울이 붉어졌다고 말했다. 온라인 서점 등 비대면 서비스가 늘어난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사람과 사람 사이 생기는 묘한 정이다. 직원과 고객이 서비스라는 매개로 형식적인 말을 전할 뿐이라도, 반복되면 사람인지라 무언가 쌓이게 마련이다.
하지만 좋은 고객, 좋은 기억만 있었던 건 아니다. 소위 ‘진상’도 많았다.
“책을 현장에서 보시는 분들 가운데는 책 가운데를 쫙 누르고 보거나 칼로 오려가거나 찢어서 훼손시키는 사람들도 있어요. 현장에 놓인 권수가 한정돼있는데 책을 이만큼 쌓아두고 보는 사람들도 있고… 책을 계산하고 갔다가 며칠 뒤 환불해달라는 요청도 부지기수죠.”
고객을 응대하는 직업을 가진 이들은 이런 식으로 억지 쓰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지식을 얻기 위해 서점을 찾는 이들 중에는 직원들한테 소리치고 폭언하는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 무릎을 꿇으라는 고객도 종종 있었다.
이처럼 매일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해야하는 교보문고 직원들에는 고객 응대를 위한 독특한 지침이 존재한다.
△모든 고객에게 친절하고 초등학생에게도 반드시 존댓말을 쓸 것 △책을 한 곳에 오래 서서 읽는 것을 절대 말리지 말고 그냥 둘 것 △책을 이것 저것 빼 보기만 하고 사지 않더라도 눈총을 주지 말 것 △책을 앉아서 노트에 베끼더라도 말리지 말고 그냥 둘 것 △책을 훔쳐 가더라도 도둑 취급하여 절대 망신주지 말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가서 좋은 말로 타이를 것. 이는 공식 운영 지침은 아니지만, 창립자의 자서전에 나오는 내용으로 80년대 하달된 지침이 알게 모르게 ‘문화’처럼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한다.
박 파트장은 서점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문학계나 학계의 흥망성쇠도 지켜봤다. 지금처럼 온라인 도서 구매가 활발하지 않을 때 교보문고에서는 인기 신간이 나오면 새벽부터 사람들이 몰려 줄을 섰다. 마치 포켓몬빵 열풍이나, 명품샵 앞에서 ‘오픈런’하는 것처럼 말이다. 교보문고의 인기는 현재도 단일 서점으로는 독보적인 수준이다. 1993년 1만명 확보로 시작한 교보문고의 회원제 통신판매제도인 ‘교보북클럽’은 현재 활성회원 기준으로만 따져도 1000만명에 달한다.
“89년도 베스트셀러가 김영사에서 출간한 김우중(대우그룹 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였는데 진짜 문의받고 뒤돌아서면 그 책 물어보고 문의받고 뒤돌아서면 그 책 물어보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아 책이 저렇게 많이 나가는구나 싶었죠. 그때 정말 그 책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팔았었거든요. 이것 말고도 국화꽃 향기, 해리포터, 다빈치 코드, 스티브 잡스, 1Q84, 안철수의 생각 등 책들은 중앙복도에 쌓아놓으면 사람들이 막 집어가서 또 나르고… 온라인 서점이 생긴 이후에도 한동안 교보문고를 찾는 손님들은 계속 교보문고만 찾곤 했죠. 또 ‘책을 읽읍시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거기서 한 번 소개되면 그다음 날 고객들이 전부 그 책 찾아달라고 난리였죠. 요즘 사람들은 책을 줄 서서 산다는 생각을 안 해봤을지도 모르겠네요.”
교보문고는 이제 그에게는 삶의 일부가 됐다.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과 함께하는 행복이 있죠. 알게 모르게 늘어나는 지식에 대한 자부심도 생기고.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은 서점에서 맡을 수 있는 책 냄새에요. 새벽에 홀로 출근했을 때, 그 쿰쿰하고도 텁텁한 책 냄새를 맡으면 절로 힘이 생기는 것 같죠. 텅 빈 서점에서 차 한잔 들고 신간이 뭐가 나왔나 돌아볼 때 묘한 쾌감도 느껴지고요. 확실히 공간이 주는 에너지가 있는 것 같아요.”
책 냄새뿐만 아니라 교보문고에는 고유한 향기가 있다. 교보문고 시그니처향인 ‘책향(The Scent of Page)’이다. 원래 내부 공조시스템으로 개발했던 향인데 방문객들 반응이 좋아 2018년 5월 시판까지했다. 현재 디퓨저, 룸스프레이 등 제품군으로 판매되면서 4년만에 1200만개 가량 팔렸다.
“책을 통해서 활자가 가진 생명력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해요. 책은 마음의 양식이고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동기가 된다는 것을 매 순간 느낍니다. 또 책은 나를 위로해주고, 토닥여주고 이끌어주죠. 많은 이들이 책을 가까이하고 찾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 아들한테도 항상 책 좀 읽으면 안 되냐고 하는데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어서 안타깝죠. 직원들끼리는 매장에 오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너무 예뻐 보인다고 농담삼아 말하곤해요. 실제로 우리는 서점 데이트 같은 걸 못해봤으니 사실은 부러운 거죠. 건전해 보이고, 참 바르구나 하는 느낌. 그런 친구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교보문고 매장 서비스직은…
박미옥 교보문고 강남점 인문·문학파트장은 교보문고 오프라인 매장 서비스직에 33년째 종사 중이다. 교보문고는 90년대까지 해당 직군을 포함해 여러 직군에 걸쳐 공개 채용 제도를 운영했으나, 지금은 자리가 나면 수시채용하는 방식으로 변경됐다. 현재 채용과정은 크게 서류와 면접 두 가지로 나뉘어 진행된다. 직무에 따라 일반직과 전문직으로 나뉘는데 기본적으로 입사 후 전문직간 직군 전환 및 일반직 직계 전환이 가능하다. 지원율은 그때그때 다르지만, 2000년대 중반 교보문고 수시채용 경쟁률은 1000:1에 달했던 적도 있다. 연봉은 나이스평가정보 올해 입사자 기준 3000만원 미만에서 시작해 평균 4000만~5000만원 사이다.
서점에서 근무하다 보니 책을 구매하면 급여공제를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있다. 급여공제에 대한 할인율은 책마다 차이가 있다. ‘리프레시 휴가’제도라고 해서 4일 이상 연속 휴가를 사용할 경우 1일의 리프레시 휴가를 추가로 부여하는 것도 다른 기업과 차별화된 복지제도다. 리프레시 휴가 기간에는 가족문화 활동비를 기본 10만원에 리프레시 휴가 1일 사용 때마다 3만원씩 추가로 제공한다. 정신적·신체적으로 장기간 휴식이 필요한 직원에게 최대 2개월 안식 기간을 부여하는 ‘채움월 휴가’도 있다. 월 단위 무급휴가이나 ‘채움월 지원금’(기본급의 50%)을 지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