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첫 특별사면인 ‘8·15 광복절 특사’를 앞두고 본격적인 숙고에 들어갔다. 윤 대통령은 민생위기 극복과 국민통합 등 명분을 내세워 대규모 사면을 단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로써는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언급해온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이 유력한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재벌 총수를 비롯한 재계 인사들도 대거 포함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사면은 고도의 통치행위이자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는 점에서 하락세인 윤 대통령의 지지율을 반등시킬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은 이에 따라 사면에 대한 각계 여론을 수렴하면서 역대 정부에서 단행된 사면의 폭과 기준도 면밀히 비교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아직 사면에 대한 1차 검토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라면서도 “지금 경제가 어렵지 않으냐. 우리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인사들로, 특정 기업인에 국한하지 않고 폭을 넓혀 사면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찬성 37.3%, 이재용 부회장은 64.4%
정치인과 경제인에 대한 사면 여론은 갈린다. 이 전 대통령 사면에 대해 국민 과반 이상은 반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이 부회장 사면에 대한 찬성 여론은 65%에 달했다.
지난 18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따르면 여권에서 8.15 광복절에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주장이 나오는 것과 관련해 이 전 대통령 사면 찬반을 조사한 결과 ‘찬성한다’ 37.3%, ‘반대한다’ 57.6%로 집계됐다(잘 모름 5.1%). 지난 5월2일 발표한 조사결과(사면 찬성 40.4% 대 반대 51.7%)와 비교하면 찬성 의견은 3.1%p 줄어든 반면, 반대 의견은 5.9%p 증가했다.
반면 이 부회장을 오는 광복절에 특별사면해야 한다는데 찬성하는 여론은 64.4%로 반대 여론(27.0%)을 두 배 이상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데일리안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여론조사공정에 의뢰해 이재용 부회장의 광복절 특별사면에 대한 찬반 여론을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64.4%가 ‘찬성한다’고 답했다. ‘반대한다’는 응답은 27.0%, ‘잘 모르겠다’는 8.6%였다.
글로벌 경제 분위기가 침체되고 주식시장이 침체되는 상황에서, 경재 위기 극복을 바라는 국민적 열망 커진 영향이 반영된 것이라는 게 여론조사기관의 분석이다.
◆87년 민주화 이후 사면 46회…늘 논란 뒤따라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한 횟수는 46회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노태우 대통령은 총 7번 특사를 단행했다. 가장 크게 화제가 됐던 인물은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범 김현희로 당시 1명만을 대상으로 한 특사는 처음이었다. 김현희는 1990년 3월27일 사형이 확정됐지만, 같은해 4월12일 특별사면됐다. 선거 직전 일어난 북한의 대한항공 폭파사건으로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군사정권이 연장됐다는 분석도 있다.
김영삼 대통령은 총 8회 특사를 단행했다. 전두환과 노태우 전 대통령도 이때 사면됐다. 1997년 12월20일 김영삼 대통령은 후임으로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과 회동해 전두환, 노태우 사면 의사를 밝혔다. 김대중 대통령이 여기에 동의하면서 전두환, 노태우는 1997년 4월17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후 249일 만에 풀려났다. 김영삼 정부는 민주화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반사면도 진행했는데 1995년 경미한 행정법규를 위반한 시민과 징계 공무원 등 258만여명이 사면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6차례 특사를 단행했지만, 형식상 특사와 동일한 성격이었던 1999년 12월31일 대통령 신년 은전 조치, 2002년 월드컵 개최 기념 운전면허 벌점 감면 등을 포함하면 총 8번의 사면을 단행했다. 김대중 정부 특사 가운데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씨 사면과 김대중 대통령의 최측근 권노갑 전 국회의원 사면은 큰 비난을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총 8회 특사를 실시했다. 2003년 4월 취임기념 특별사면 때 전원을 공안사범으로 하면서 이전 정부와 차별화 하는 듯 했지만, 이후 2005년 석가탄신일 기념 특별사면 대상자에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을 포함시켜 논란이 됐다. 이밖에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업, 김홍걸 씨와 임동원, 신건 전 국정원장 등도 사면, 복권돼 비판 여론이 일었다.
이명박 정부는 총 7회 특사를 단행했다. 가장 논란이 됐던 특사는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 단독 사면이다. 이명박 정부는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를 명분으로 IOC 위원이었던 이 전 회장을 2009년 12월31일 단독 사면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 때는 경제인 특별사면이 많았는데,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을 포함해 송필호 중앙일보 사장, 김병건 동아일보 부사장, 조희준 국민일보 사장 등 언론사주 등을 2008년 광복절 특사 대상으로 삼아 비난받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는 임기가 짧았던 탓에 3차례 특사에 그쳤다. 2015년 광복절 특사에 최태원 SK그룹 회장, 2016년 이재헌 CJ그룹 회장을 사면 대상에 포함해 재벌 특혜 논란을 낳았다.
문재인 정부는 재벌 경제인 특별사면은 실시하지 않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중근 부영 회장 등이 임기 시절 가석방됐다. 2022년 신년 특사 대상에 박근혜 전 대통령을 포함시키고,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공민권을 회복시키는 복권 조치를 단행하면서 뇌물, 알선수재, 알선수뢰, 배임, 횡령 등의 범죄는 사면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어겼다. 문 전 대통령은 임기 중 총 5번의 특사를 단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