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어디에 내려놓았을까. 사방이 새하얗게 막막했던 공간에 난민보트 하나가 쓰러져 있다. 그런데 이 난민보트가 놓아진 지 불과 한 달 만에 다시 깊고 푸른 물 위에 띄워졌다. 난민보트가 만난 물은 더 이상 성난 파도에 맞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 아니다. 환대와 연대의 말들로 가득 찬 맑고 파란 희망의 청색 물결이다. ‘바다는 물을 안는다’, ‘생각보다 많은 동료와 친구가 있어’, ‘함께 가자’, ‘바람의 방향은 바꿀 수 없지만 닻의 방향은 바꿀 수 있다’. 파랑 물감을 머금은 붓으로 관람객들이 메시지를 남겼고, 이들의 붓질이 한 달도 안 돼 흰 벽을 푸른 빛으로 가득 채워버렸다. 제주도에서 전시되고 있는 설치미술 작품 ‘채색의 바다(난민보트)’ 이야기다.
제주 서귀포시에 위치한 포도뮤지엄에서 디아스포라와 마이너리티를 주제로 한 전시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중에 만나게 되는 이 작품은 일본인 설치미술가이자 행위예술가, 평화운동가, 존 레넌의 배우자로도 친숙하게 알려져 있는 요코 오노(89)의 것이다.
작가는 관람객들에게 ‘세상의 모든 마이너리티에게, 혹은 어딘가에서 소외감을 겪었던 자기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남겨달라’는 메시지와 함께 이 공간을 만들었다. 관람객들 손에 파란 물감이 든 통과 붓이 들리자, 이들은 무엇을 남길지 고민했다.
배에 ‘동행호’란 이름을 붙여준 이도 있고, ‘우리가 사는 장소, 우리가 지닌 이름은 잊혀도 무방한 아무 의미없는 귀속의 수단일 뿐’이라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올가 토카르추크의 말을 옮긴 이도 있다. ‘오마니 보고 싶다!’라는 누군가의 외침 아래 ‘나도!’라고 댓글 달 듯 적어 놓으며 우리 안의 어린아이를 드러낸 이도 있다.
가끔 붓을 들어볼 기회도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 붓을 쥐어주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단 한순간도 같지 않은 작품이 생생하게 보여준다. 무언가를 쓸 기회가 주어졌을 때, 도화지 앞에 선 사람들이 얼마나 진실해지는지, 각자의 단어와 문장들이 고스란히 드러낸다. 소셜미디어에는 “이 방에서 30분을 보내고서야 다음 공간으로 넘어갔다”는 후기가 보인다.
전시장 1층에는 요코 오노의 작품을 비롯해, 누구나 이방인을 경험하는 시대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하는 테마공간 작품 ‘이동하는 사람들’은 국적, 인종, 직업, 나이, 성별이 모두 다른 사람들의 그림자만 드러내며 차별의 핑계가 됐던 다름을 지워낸다. 마치 전시장 입장 전 정화의식처럼, 예술 여정을 떠나기에 앞서 ‘알고 보면 같은 우리’라는 동질감을 상기시킨다.
회색 그림자가 된 관람객은 다음으로 만나게 되는 이배경의 미디어 설치 작품 ‘머물 수 없는 공간’ 안에서 망망대해에 떠 있는 느낌을 받는다. 관람객을 둘러싼 채 일렁이는 바다는 특이하게도 똑같은 크기의 정육면체 큐브들로 이뤄져 있다.
이 큐브들을 의아하게 바라봤던 시선은 다음 공간에서 필리핀 출신 호주 이민자 부부 작가인 알프레도·이자벨 아퀼리잔의 ‘주소’에 가 꽂힌다. 정육면체 상자 140개가 벽돌인 양 쌓아 올려져 집 형태를 이룬 작품이다. 필리핀에서 해외로 물품을 보낼 때 세금을 면제받는 최대 크기인 가로, 세로, 높이 50㎝짜리 소포상자에 선물과 생필품을 욱여넣은 것들이다. 켜켜이 갠 옷 틈으로 어떤 이는 낡은 다리미를, 어떤 이는 어린이 장난감을 끼워넣었다. 각자의 생존기술이 동원된 상자들의 총체는 각양각색 삶의 총합이자, 세상의 축소판이다. 이 배경 작품 속 큐브들은 그제서야 지금 내 주변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으로 구체화되고, 파도가 아니라 지구 위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되새겨본다.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인데, 미리 약속이나 한 듯 서로를 뒷받침하며 공명한다. 강동주의 ‘빗물 드로잉’은 정연두의 사탕수수 하우스에 내리는 비처럼 다가온다. 비가 정연두의 ‘사진신부’ 속 설탕공예로 제작된 1900년대 초 하와이 이주 조선 소녀들을 녹여버리지 않기를, 관람객은 애타는 마음으로 작품에 빠지는 경험을 한다.
2층에선 무지갯빛을 받으며 각기 다른 포즈로 널브러져 있는 27개 삐에로 모형이 전시를 마무리한다. 스위스 출신 우고 론디노네의 ‘고독한 단어들’이다. 광대들에겐 저마다 이름이 있는데, 낮잠, 한숨, 꿈, 울음, 방귀, 앉다, 바라다, 샤워, 넘어지다 등이다. 현대인이 홀로 고립된 24시간을 보냈을 때 할 행동, 벌어질 현상 등을 상상해 나열한 것이다. 성인 크기로 실감나게 표현된 광대 모형은 실제로 중노동 중에 잠깐 휴식을 취하려다 잠들어버리고 만 인간들처럼 보인다. 모두가 적당하고 균일하게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광대들은, 밀도 높은 도시에서조차 외딴 섬처럼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화상으로도 다가온다. 관람객은 광대의 비어있는 옆자리로 가 함께 철퍼덕 앉아 어깨를 내어주고 싶은 마음이 된다. 아름다운 남쪽 섬으로 간 사람들은 한결 여유로운 자세로 빽빽했던 마음속에 관용의 자리를 만든다. 모두가 난민화되는 세상에서 연민과 사랑이란 대안을 제시하는 결말이다.
포도뮤지엄은 지난해 혐오사회를 주제로 기획전을 했다. 최근 시작한 두번째 전시는 지난해 제기한 문제의 해법을 찾아보자는 의도에서 기획했다. 혐오의 반대편에 공존이 있음이 자명하기에, 일찌감치 해답을 찾은 뒤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오래 정성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주제의식과 예술성은 양립하기 쉽지 않다. 선한 의도마저 프로파간다의 경계에 서는 탓에, 예술의 지고지순함을 말하는 이들에게 특히 경계의 대상이 되곤 한다. 전시는 전하고자 하는 주제와 예술성 모두에 진실되게 접근함으로써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 꽉 찬 리서치를 토대로 공들여 제작해놓고는 익명으로 선보이는 ‘겸손한’ 작품들인 ‘테마공간’도 그런 태도가 엿보이는 사례다. 김희영 디렉터는 기자간담회에서 “미술을 통해 인식개선과 변화, 사회적 가치를 보여주는 데 관심을 가져왔다”며 “뮤지엄에 와서 공감하며 만드는 사회적 가치가 크다는 확신과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우고의 광대들은 국내에선 처음 선보이지만, 유럽 유수의 미술관들에서 관람객을 만난 바 있다. 원래는 총 45개 광대로 이뤄진 작품인데 포도뮤지엄에서는 공간 제약상 27개만 꺼내 놓았다. 45개 광대가 보여주는 집단적 스케일을 볼 수 없는 점은 아쉽다.
세계적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인 그는 지난 수년간 세계 곳곳에 비슷한 형식으로 야외 간판형 작품을 세웠다. 가령 독일에서 ‘라이프 타임(LIFE TIME)’이란 문구를, 러시아에서는 ‘에브리원 겟츠 라이터(EVERYONR GETS LIGHTER)’를 설치했다. ‘러브 인벤츠 어스(LOVE INVENTS US)’, ‘아워 매직 아워(OUR MAGIC HOUR)’도 있었다. 그가 이번 한국 전시에서 관람객을 배웅하는 설치품은 ‘롱 라스트 해피(LONG LAST HAPPY)’, ‘오래오래 행복하게’다.
내년 7월3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