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업사를 운영하는 A(50)씨는 지난 5일 집에 날아온 우편을 뜯어보고 깜짝 놀랐다. 채권추심 전문기관에서 A씨의 채권을 통신사로부터 수임했다며 보낸 통보서였다. 서류엔 처음 보는 휴대전화 번호로 결제된 500여만원의 미납금액이 적혀 있었다. 알고 보니 A씨 휴대전화를 개통해줬던 판매점주 이모(41)씨가 그의 명의를 도용해 휴대전화를 개통한 후 소액결제 등을 통해 돈을 쓴 것이었다.
쓰지도 않은 500여만원의 채권도 황당했지만, 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얼마 전 대출 신청을 한 은행으로부터 대출부결 통보를 받은 것이다. A씨는 다음 달 초 집을 빼는 세입자에게 전세자금을 돌려주기 위해 은행에 3억~4억원을 대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은행은 적은 돈이지만 제때 갚지 않은 채무가 있다며 대출신청을 거절했다. A씨는 “황당하지만, 급한 대로 일단 통신사에 500만원을 결제하고 다시 대출을 급하게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휴대전화 판매점에서 고객 명의를 도용해 무단으로 휴대전화를 개통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명의도용 건수는 매년 조금씩 줄어들고 있지만 1인당 피해액수는 꾸준히 늘어나 피해자의 손실은 커지는 추세다. 명의도용 즉시 개인이 명의도용 사실을 알아채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명의를 도용해 휴대전화를 개통할 시 피해자가 그 사실을 즉시 인지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현재도 명의도용 시 이용자에게 문자로 이를 알려주는 명의도용 방지 서비스가 시행되고 있긴 하지만 이용자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휴대전화로 통보하기도 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에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은 최근 이용자가 기존에 가입한 모든 휴대전화에 명의도용 사실을 알리도록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개인정보 파기 확인 등 관리점검 책임이 있는 통신사에도 책임을 물어 행정처분을 내리는 등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권헌영 고려대 교수(정보보호대학원)는 “사건이 터지면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조사를 해서 통신사의 책임자를 처벌하고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행정처분을 해야 한다”며 “그래야 불법행위가 근절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