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대로라면 나는 지금쯤 모국어인 한국어가 들리지 않는 머나먼 이역에서 생의 마지막 구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조금은 외롭게, 조금은 긴장되게, 그렇게. 계획대로라면, 이라는 이 구절에 방점을 둔 이유가 실제 나는 떠나지 못했음을 뜻한다. 기실 나는 인생의 남은 시기를 그곳에서 보내기 위해 필요한 인터뷰도 마쳤고, 생계를 위해 나름 일의 업무까지 이야기가 끝난 상태였다. 왜 떠날 결심을 했을까. 그러고 싶었다. 관성처럼 살아온 삶에 굳은살이 박이면서 모든 것에 무뎌지고, 무감각해졌고, 또 심드렁해졌다. 그 삶에 충격을 가하고 싶었고, 그 충격으로 삶에 열정과 활력을 되찾고 싶었다. 가상한 용기이자 나로서는 잘 살기 위한 방편이었다.
한국어로 글을 쓰는 이가 한국어가 쓰이지 않는 이역의 나라에서 살겠다고 마음먹기까지는 그에 걸맞은 용기가 있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그것도 잠깐의 여행으로서의 외유가 아닌, 아예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일. 그것은 모험이나 도전이라고 해도 좋고, 좀 더 과격하게 표현해 전복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제 돌아와 고요히 침잠해야 할 나이에, 남은 생을 정갈하게 갈무리해야 할 나이에, 그렇게 떠날 생각을 하다니. 떠난 그곳과 그곳에서의 시간들이 얼마만큼의 충격으로 내 생을 흔들어댈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또한 삶의 새로운 동력으로 삼고 싶었다. 엉망진창 깨지고 부수어져도 그걸 글로 써내면 후회 없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생은, 삶은, 방황의 연속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