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을 겪던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이 지난 2일 신설됐다. 경찰청이 1991년 내무부 치안본부로부터 독립한 지 31년 만에 목도하는 일이다. 경찰국 조직 얼개는 ‘경찰대 출신 배제’를 기조로 짜였다. 대통령실의 국방부 청사 이전만큼이나 일사천리였다. 총경급 경찰서장들의 반발과 함께 불거졌던 ‘경란’ 사태는 수면 아래 침잠했다. 갈등 봉합은 일시적이다. 정부의 통제 여하에 따라 언제든 재점화될 가능성은 남았다.
경찰국 신설은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작품이다. 그는 지난달 25일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는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쿠데타’라고 표현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단순 비유나 메타포(metaphor)가 아니다. 당시 기자회견 발언을 보자. “경찰은 물리력과 강제력, 심지어 무기도 소지할 수 있다. 이런 역할과 책임을 맡은 분들이 임의적으로 자의적으로 한군데 모여서 회의를 진행할 경우에는 대단히 위험하다”면서 “하나회가 12·12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 바로 이런 시작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현대사에 걸핏하면 등장했던 ‘쿠데타의 망령’을 끄집어낸 것이다. 그것도 판사 출신 머리에서.
“경찰서장 회의를 두고 쿠데타까지 연결 짓는 그 ‘기발한’ 상상력이 놀랍다. 후진국이라면 모를까 21세기 한국에서, 그것도 메타버스 시대에….” 저녁밥을 먹다 말고 뉴스를 보던 20대 후반 딸이 한 소리 한다. “경찰 통제에 무심했던 이들까지도 새 정부가 그럴 수도 있겠다며 등 돌리지 않겠어?”라며 한 번 더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너나 잘해”라며 눙쳤지만 속으로는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쿠데타 발언을 두고 “사안의 절실함과 중대성과 비교해 장관이 이야기할 수 있다”고 편든 것도, 윤석열 대통령이 “중대 국기문란”이라며 두둔한 것 또한 국민들로선 그닥 달갑지 않다. 결국 이 장관이 국회 대정부질문 때 “발언이 지나쳤다”며 한발 물러섰지만 버스는 이미 떠난 뒤였다. 비싼 대가를 치를 듯했다. 역시나 이후 대통령 지지율이 30%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정권에 대한 총체적 불신 모드가 아니고서야 취임 100일도 안 돼 이러기는 정말 쉽지 않다. 경솔함이 제 발등을 찍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