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국회의장과 낸시 펠로시 미 의회 하원의장이 4일 국회에서 회담을 갖고 입법부 차원의 양국 간 외교·안보 및 경제협력을 약속했다. 북한 비핵화에 대한 실질적 억지력을 확보하는 한편 첨단 기술 협력을 포함한 경제 공조를 협의했다. 두 의장은 회담 직후 내놓은 공동언론발표문에 △실질적 북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양국 정부 노력 △미국 진출 한국 기업에 대한 미 의회 차원 협조 △양국 의회의 한·미동맹 70주년 기념 결의안 채택 등을 담아 구체화했다.
특히 우리 측은 미국에서 통과된 ‘인프라법’과 ‘반도체 및 과학지원법’을 거론하며 미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에 대한 미 의회 차원 협조를 당부했다. 미국의 국가 단위 인프라 개선 사업에 한국 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미국 내 반도체 업체 지원금 혜택을 한국 기업도 누릴 수 있게 길을 터 달라는 요구다.
인프라법은 낙후된 도로나 교량을 보수하거나 광대역 인터넷망을 확대하는 등 총 1조2000억달러 규모 인프라 개선 계획이다. 반도체 및 과학 지원법은 반도체 업체가 미국에 공장을 짓는다면 보조금과 연구비를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총 590억달러 규모다.
펠로시 의장은 “이번 주요 순방 목적 중 하나가 안보”라며 “안보에 대한 우리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여러 방법 중 하나는 주한미군에게 감사를 표하고, 우리 동맹국인 한국에 감사를 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반도 비핵화와 경제적 성장, 지역에 있어서 중요한 경제 관계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 방안을 논의하고 경제위기와 코로나 문제 등 중요한 현안을 논의하길 기대한다”고 화답했다.
이날 펠로시 의장은 보라색 정장에 보라색 구두를 신고 국회 본청에 들어섰다. 태극기와 성조기가 그려진 마스크와 배지를 각각 착용한 채였다. 전통의장대의 사열을 받고 본청에 들어선 펠로시 의장은 김 의장 안내를 받으며 회담장으로 이동했다. 이날 회담에는 국민의힘 권성동·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와 김상희 국회 부의장, 윤재옥 외교통일위원장과 윤상현·이원욱·이재정 여야 외통위원들이 동석했다. 미 측에서는 펠로시 의장 아들, 폴 펠로시 주니어와 마크 타카노 하원 보훈위원장, 그레고리 믹스 외무위원장과 라자 크리슈나무르티·수잔 델베네·앤디 킴 하원 의원,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가 참석했다.
다만 펠로시 의장은 이날 지난 대만 방문에서처럼 중국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다.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 입장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펠로시 의장은 지난 차이잉원 대만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대만 민주주의를 보장하려는 미국의 결심은 매우 확고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또 대만 출국 날 공개된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혹독한 인권 무시는 지속하고 있다. 대만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보다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날 회담과 오찬자리에서 양안 관계 등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고 알려졌다. 양측은 공동언론발표 이후 질의·응답도 생략하며 말을 아꼈다. 국회 관계자는 “미 측과 협의 끝에 회담과 공동언론발표만 공개하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