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선후배 작가 몇을 만났다. 내 나이쯤 되고 보니 늙어가는 부모가 누구나의 가슴에 얹혀 있다. 한 선배 소설가는 얼마 전 구순의 노모를 보냈고, 후배 소설가는 몇 년 전 치매 든 어머니를 요양원에 오래 모셨다가 보냈다. 아흔일곱의 내 어머니는 얼마 전 치매 초기 진단을 받았다. 치매라고는 하지만 아직 어머니의 정신은 또렷하다, 자존심은 늙을수록 더 강해진다.
내 어머니는 죽어라고 빨래를 내놓지 않는다. 제발 빨래 좀 내놓으라고 하면 정색을 한다.
“늙었다고 인자 나가 사램으로도 안 보이냐? 나도 빨래 정도는 할 수 있어야. 옷이라야 얼마 되도 않는디 쪼물쪼물 빠는 것이 뭣이 힘들다고 빨래도 못 허게 허냐?”
하도 그러기에 싸움싸움해서 겨울에만 어머니 빨래를 내가 했다. 작년만 해도 여름옷은 혼자 잘 빨기에 그런 줄 알았다. 한 달 전, 어머니 집에 들어갔는데 꼬롬한 냄새가 났다. 환기를 안 시켜 그런가 싶어 창문을 활짝 열었는데도 냄새는 가시지 않았다. 집안을 샅샅이 뒤졌다. 냄새의 진원지는 화장실 안 대야 안에 담아 놓은 묵은 빨래였다. 빨래를 얼마나 모아놓은 것인지 커다란 대야로 한가득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내 어머니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집 걸레는 손님들이 행주로 착각할 정도였고, 장독대는 일 년 삼백육십오 일 반짝반짝 윤이 났다. 나이 들어 어쩌다 어머니가 내 집에 오면 혀를 차며 걸레부터 집어들었다. 이쑤시개에 가재 수건을 끼워 창틀의 먼지 한 점까지 야무지게 훔쳐내던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가 늙어 추레해진 것을 나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머니에게 있는 대로 성질을 부리고 빨랫감을 집어들었다.
“제발 빨래 좀 내놓으라고 했잖아! 세탁기 돌리면 되는데 뭐가 문제라고 빨래를 산더미같이 쌓아놔!”
어머니는 내가 집어 든 빨랫감을 빼앗으려 달려들었다. 그래봐야 늙은 어머니의 몸짓이 젊은 나보다 빠르겠는가. 어머니는 그날, 자존심이 상했다. 밥도 평소의 반밖에 먹지 않았다. 어머니가 정말 늙었다는 것을, 어머니 아흔일곱 되어서야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어머니가 빨랫감 쌓아둔 걸 잊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힘에 부쳐 빨지 못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어느 쪽이든 내 어머니는, 너무 청결해서 짜증이 날 정도였던 내 어머니는, 자기 몸 하나 주체할 수 없이 늙어버린 것이다. 늙은이란 이런 것이다.
이런 말을 했더니 선배 소설가가 나를 나무랐다. 그리고는 한 마디 덧붙였다.
“치매는 병이 아니야. 치매를 병이라 생각하면 안 돼. 치매는 나도 사람이라는, 마지막 존재의 증명 같은 거야. 나도 욕을 할 줄 안다, 나도 남자 좋아할 줄 안다, 나도 나 혼자 배 터지게 먹을 줄 안다, 평생 참고 살아왔던 그걸 죽기 전에 자식에게 알리려고 욕하고 떼쓰고 음식 숨기고 하는 거야.”
치매가 병이 아니라는 말은 수긍하기 어려웠지만 뒷말에는 숙연해졌다. 순간 나보다 나이 많은 한 수강생의 말이 떠올랐다. 그이의 어머니는 자식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단계의 중증 치매로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요양원에서 그이에게 연락을 했다. 어머니가 젊었든 늙었든 남자만 보면 달려들어 만지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 어머니는 스물셋에 청상과부가 되어 자식 넷을 홀몸으로 키웠다.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였다. 자식 키우는 일조차 숨 가빠 제 몸의 욕망 같은 건 돌아볼 새도 없었다. 그래서 그이가 대답했단다.
“좀 봐주씨요. 오직이 참고 살았으먼 그러겄어라? 죽기 전에 쪼깨라도 풀고 가게 쪼까 봐주씨요이.”
선배의 말을 듣고 생각하니 그이는 나보다 몇 수 위인 고수였다. 그이는 알았던 것이다. 어머니가 참고 살았던 세월을. 참고 산 무엇인가가 아직도 마음 깊이 응어리져 있는 것을. 내 어머니는 무엇을 참고 살았을까? 어머니가 여전히 고상한 인간이기를 바라지 말고 나도 오늘부터는 어머니의 무언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모양이다.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