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11명의 경찰관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매년 20명 안팎의 경찰관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추세가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참혹한 사건 현장을 일상적으로 목격하는 데다 야간 근무에 시달리는 업무 특성이 그 원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일선에서는 윤석열정부 초대 치안 수장으로 임명된 윤희근 경찰청장이 실효적인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11일 세계일보가 더불어민주당 오영환 의원실을 통해 경찰청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한 경찰공무원은 총 11명이다. 지난 3월 서울 강북경찰서 소속 30대 A 경감은 서대문구 한 오피스텔 주차장에서 유서를 남긴 채 숨졌다. 2월에는 서대문경찰서 모 파출소에서 20대 B 경장이 근무 중에 소지하고 있던 총기를 이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찰공무원 숫자는 최근 5년간 매년 20명대를 기록하고 있다. 2017년 22명에서 2018년 16명으로 소폭 감소했지만,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는 3년 연속으로 20명을 웃돌았다. 올해도 7월까지 11명인 것을 감안하면 20명 안팎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현황을 연령별로 분석할 경우 50대가 43명으로 가장 많았다. 40대가 38명, 30대가 21명, 20대가 1명으로 뒤를 이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원인으로 가장 많이 꼽힌 것은 정신건강이다. 경찰청이 한국희망존중재단과 함께 2017~2020년 사례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정신건강’이 원인이 된 극단적 선택은 32건(중복 집계)으로 가장 많았다. ‘직장 문제’가 26건, ‘가정 문제’와 ‘경제 문제’가 각각 22건이었다.
다른 통계에서도 경찰관들의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정황은 뚜렷하게 드러난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건강보험공단에 의뢰해 분석한 자료를 보면 현직 경찰관 중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들은 2016년 777명에서 2017년 865명, 2018년 1004명, 2019년 1091명, 2020년 1123명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4년 새 50% 가까이 늘었다.
현장에서는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일선의 경위급 경찰관 C씨는 “야간 근무를 자주 하는 직업 특성상 다른 공무원에 비해 업무 강도가 굉장히 높은 편이라고 생각한다”며 “사건·사고 현장을 자주 경험하는 수사부서는 물론 파출소나 지구대 등 주취자나 악성 민원인에 의해 자주 시달리는 대민부서 역시 상당한 스트레스를 겪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경찰관의 극단적 선택이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경찰 조직 문화를 쇄신할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민서 동국대 박사는 ‘경찰관의 외상 후 스트레스가 자살 생각에 미치는 영향’ 논문에서 “경찰관의 직무 스트레스를 지원하는 조직이나 인프라, 제도 모두 부족한 상황”이라며 “경찰 조직문화의 문제점을 진단·개선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기구를 신설하는 것을 검토하고, 마음동행프로그램의 익명성을 보장하고 상담 전문인력을 확충하는 등 조직 차원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윤 청장은 이날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화상으로 전국경찰회의를 열고 모두발언을 통해 “경찰의 중립성·책임성 강화 방안을 비롯한 복수직급제, 기본급 인상, 수사역량 강화 등 4대 현안을 집중 논의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