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3월 청나라 실력자 리훙장은 73세의 노구를 이끌고 바다 건너 일본의 항구 도시 시모노세키로 향했다. 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를 만나 8개월여 동안 이어진 청일전쟁을 끝낼 담판을 하기 위해서다. 청군은 아산 앞바다 풍도와 천안, 평양에서 처참하게 무너졌고 최정예 북양함대마저 산둥반도 앞바다에서 궤멸한 후였다. 리훙장은 이토가 단골로 찾아가는 복요리 전문 요정을 찾아야 했고 길거리에서 날아든 총알로 얼굴을 다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사실상 조선의 지배권을 일본에 넘기는 ‘시모노세키’조약이 체결됐다. 이 조약은 “청은 조선이 완결 무결한 자주독립국임을 확인하며”로 시작되며 천문학적인 배상금과 랴오둥 반도 등 영토 할양이 담겼다.
127년이 흘러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1000㎞나 떨어진 칭다오에서 비슷한 풍경이 연출됐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9일 이곳으로 박진 외교부 장관을 불러 “양국 국민의 최대공약수”라며 “마땅히 해야 할 5개항(5個 應當)을 견지해야 한다”고 겁박했다. 첫 조항이 “독립자주 노선을 견지해 외부 간섭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주도의 공급망 가입 불가, 대만 문제 언급 금지 등을 암시하는 말이 뒤따랐다. 다음 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과거 한국 정부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3불(사드 추가 배치 불가, 미국 미사일방어체계 불참, 한·미·일 군사동맹 불가)·1한(사드 운용 제한) 정책 선서를 했다”며 “새 관리는 과거의 부채를 외면할 수 없다”고 협박했다. 중국이 과거 일본에 당했던 굴욕을 한국에 강요하는 치졸한 행태가 아닌가.
중국이 돌연 윤석열정부에 모욕적 발언을 쏟아내고 2017년 사드 갈등 봉합 후 잠잠했던 사드 카드까지 꺼낸 이유는 뭘까. 윤 정부의 외교 난맥상이 화를 자초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권력 서열 3위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지난 3일 한국을 찾았는데 정부는 대통령 면담을 놓고 다섯 차례나 말을 바꾸며 오락가락했다. 윤 대통령이 “휴가로 만나지 않는다”고 했다가 “조율 중”이라고 하더니 재차 “만날 일이 없다”고 번복했다. 결국 전화 통화를 했는데 “국익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군색한 변명을 댔다. 중국 눈치 보기를 빼곤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