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주차장에 잠겨 있던 차들 차례입니다. 며칠째 쉬지도 못하고 침수차들 견인하고 있는데 끝이 안 보이네요.”
지난 16일 오후 3시쯤 경기 과천 서울대공원 주차장은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차량이 빽빽하게 차 있었다. 대공원에 나들이 나온 방문객들의 차가 아니다. 지난 8일 쏟아진 폭우에 침수됐던 차들이 이곳에 ‘임시 보관’ 중이었다. 주차장에는 견인차들이 계속 오가며 침수차들을 실어날랐다. 보험사 관계자들은 새롭게 들어오는 침수차들을 점검하느라 정신없이 바빴고, 폐차 판정을 받아 폐차장으로 다시 실려나가는 차도 많았다.
한 견인차는 흙탕물을 흠뻑 뒤집어쓴 차를 끌고 들어왔다. 견인업체 관계자는 “지난주에는 견인이 더 시급한 도로 위 차들을 옮겼다면, 최근엔 지하주차장에 잠겼던 차들을 견인하고 있다”면서 “광복절에도 쉬지 못하고 계속 작업을 했다. 물량이 감당 안 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침수차 견인은 일반차보다 더 까다롭다. 그는 “사이드 브레이크가 풀리지 않아 견인 각도를 맞추는 것이 어렵고, 차량이 젖어 무겁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취재진이 100여대의 차량을 살펴본 결과, 47대가 ‘실내침수’(완전침수)라고 적혀 있었다. 차량 내부의 미디어가 기능하지 않거나 시동을 걸 수 없다는 메모도 많았다. 일부 차량은 진흙으로 뒤덮이고 찌그러지는 등 침수 당시 상황의 심각성을 짐작게 했다. 한 트럭은 앞 유리창이 전부 깨지고 실내에 진흙이 가득했다.
수도권 곳곳에 있는 폐차장들에도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경기 화성의 한 폐차장 관계자는 “지난주부터 차들이 줄지어 들어오고 있다. 개인 차주들의 문의도 계속 이어진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의 한 주민은 “폐차장에 연락했지만 아직 순서가 안 됐다고 해서 집 앞에 차를 방치한 채 기다리기만 하고 있다”고 전했다.
완전히 침수돼 보험사의 전손처리 결정을 받은 차량의 경우 자동차관리법에 따라 반드시 폐차해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문제는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거나 일부만 물에 잠겨 보험사에 신고하지 않은 차들이 피해 사실을 숨긴 채 중고차 시장에 대거 유입될 수 있다는 점이다. 보험에 가입했지만 가입자 과실로 보상 대상에서 제외돼 피해 접수를 하지 못한 차들도 시장에 흘러들어올 가능성이 크다. 침수차들이 중고차 시장에서 유통될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수리를 받더라도 물에 한 번 잠긴 전자장비 등에선 예상할 수 없는 고장이 생길 가능성이 커 안전에 위협이 된다.
자동차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한동안 중고차를 사면 안 될 것 같다” 등 침수차가 매물로 나올까 봐 걱정하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침수차 이력 관리 등 관련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김필수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침수차 중 신고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두 달 정도 이후부터 거래에 조심해야 한다”며 “정부에서 침수차 이력 관리 시스템 강화 등 관련 제도를 마련해 침수차를 걸러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최근 “침수 사실을 숨기고 차량을 매매하는 잘못된 관행이 있다”며 “이력관리를 강화하고 보험 미가입 차량을 개별적으로 정비한 경우에도 소비자가 침수 이력을 보다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