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철수 반대’ 한국전 참전용사 싱글러브 장군 영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카터 대통령의 계획은 곧 전쟁의 길로 유도하는 오판이다.”

 

1977년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계획에 반대했다가 본국에 소환돼 강제 퇴역당한 존 싱글러브 전 유엔군사령부 참모장이 19일(현지시간) 영면에 들어갔다. 이날 워싱턴 인근의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싱글러브 예비역 소장의 장례식과 안장식이 엄수됐다. 

워싱턴 인근의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19일(현지시간) 한국전 참전용사 고 존 싱글러브 예비역 소장의 안장식이 거행되고 있다. 워싱턴특파원단

 

싱글러브 장군은 1953년 ‘철의 삼각지대’ 김화지구 전투에서 미군 대대장으로 활약했던 한국전 참전용사다. 1977년 유엔사 참모장으로 복무할 당시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계획에 반대했다가 사실상 ‘괘씸죄’에 걸렸다. 

 

고인은 유엔사 참모장으로 한국에 근무하던 1977년 카터 미국 행정부가 주한미군을 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철군한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5년 이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카터 대통령의 계획은 곧 전쟁의 길로 유도하는 오판”이라고 정면 비판했다. 미군이 철수하면 북한은 물론 소련(현 러시아)과 중국도 이를 ‘미국이 한국 방어를 포기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 신속히 남침을 시도할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카터 대통령은 이를 일종의 ‘항명’으로 받아들였다. 미국 국방부는 고인을 유엔사 참모장 자리에서 해임하고 본국으로 소환했다. 카터 대통령 앞에 불려간 싱글러브 장군은 “주한미군 철수 계획은 낡은 정보에 근거해 취해진 것”이라며 “현재의 북한군은 그때보다 훨씬 강하다”고 강조했다.

 

싱글러브 장군은 이듬해인 1978년 4월 강제 퇴역 조치됐다. 훗날 중장, 대장으로 진급하지 못하고 소장에 그친 것이 아쉽지 않느냐는 물음에 고인은 “내 별 몇 개를 (한국인) 수백만명의 목숨과 바꿨다고 생각하면 이 세상에 그 이상 보람 있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싱글러브 장군의 아내 조앤 래퍼티 여사는 기자들과 만나 “그는 한국을 사랑했다. 그는 여러분 모두를 사랑했다”고 고인의 한국에 대한 애정을 전했다. 래퍼티 여사는 “그가 했던 일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그는 나라를 위해 많은 일을 했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태용 주미 한국대사가 대독한 조전을 통해 “장군께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신 전쟁영웅이자, 한국전에서도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인 김화지구에서 대대장으로 전투를 지휘하며 대한민국을 끝까지 지켜냈다”며 “특히 장군은 유엔군사령부 참모장으로 근무하며 대한민국의 방위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큰 용기를 보여주신 강직한 군인이셨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어 “자신의 진급과 명예보다 대한민국 국민을 전쟁으로부터 지키는 것이 군인으로서 가장 큰 보람이라는 장군의 말씀이 아직도 우리나라 국민의 가슴 속에 깊이 남아 있다”면서 “대한민국은 장군과 같은 위대한 영웅들을 잊지 않고 영원히 기억하겠다. 영웅들의 헌신 위에 세워진 한·미동맹도 더욱 굳건히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섭 국방장관도 조전을 보내 “고인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기 위해 각별히 헌신했다”며 “싱글러브 장관은 진정한 영웅이며, 미군 철수를 고민하는 어려운 순간 한미동맹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군인으로서 경력을 건 인물”이라며 고인의 노력에 감사를 표했다.

 

미군을 대표해 참석한 스콧 브라우어 준장은 추도사에서 “싱글러브 장군은 성공한 삶과 의미 있는 삶 중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산 사람”이라며 “그는 충실하고 리더십을 가진 진실한 사람이었다”고 추모했다.

 

고인은 지난 1월29일 미국 테네시주 자택에서 아내와 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