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매체가 윤석열 대통령과 미국 고위인사들 간 비공개 간담회를 ‘쑥덕공론’이라고 비방했다. 쑥덕공론은 ‘남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낮은 목소리로 은밀하게 자꾸 이야기하다’는 뜻의 ‘숙덕거리다’와 ‘실속 없는 논의’를 의미하는 ‘공론’(空論)을 세게 표현한 것이다. 북한은 대외선전매체를 동원해 주요 한·미 또는 한·일 간 전략 논의에 대해 “쑥덕공론을 벌였다”고 비판해왔다.
북한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23일 “얼마 전 역도는 괴뢰 대통령실에서 서울 주재 미국 대사와 남조선 강점 미제 침략군 사령관을 동시에 만나 비공개 간담회를, 그로부터 며칠 후에는 서울에 날아든 전 미 국무장관, 미 상원 외교위원회 동아시아태평양소위원장과 연이어 쑥덕공론을 벌여놨다”고 비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달 9일 저녁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 대사와 폴 러캐머라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과 비공개 간담회를 한 데 이어 12일 천주평화연합(UPF) 주최 콘퍼런스 참석 차 방한한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 국무장관과 에드워드 마키 미 상원 외교위원회 동아태소위원장을 접견한 것을 지칭한 것이다.
이 매체는 “여러 모의판에서 윤석열 역도는 그 누구의 핵과 미사일 고도화니, 동북아시아와 세계 평화에 큰 도전이니 하며 저들의 반공화국 대결 책동에 대한 지지를 구걸해댔다”며 “이번 모의판들은 통치력 한계점에 다다른 역도가 상전이 저들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이 두려워 벌여놓은 추악한 구걸 놀음”이라고 주장했다.
북한 매체가 윤석열정부를 향해 ‘쑥덕공론’을 운운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북한의 다른 선전매체 ‘통일의 메아리’는 윤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이던 지난 4월26일 한일정책협의대표단 파견과 관련해 “우리 공화국의 자위적 국방력 강화 조치들에 대해 유엔 결의 위반이요, 평화·안전에 대한 위협이요 하는 나발을 불어대며 그것을 구실로 군사 대국화 야망을 실현해보려고 날뛰는 일본 족속들과 쑥덕공론을 벌려놓은 것”이라고 비난했다.
북한은 주로 한·미 간 안보 전략 협의를 ‘쑥덕공론’이라며 강한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북한 선전매체 ‘메아리’는 한·미가 제18차 통합국방협의체(KIDD)를 열고 북 핵·미사일 맞춤형 억제전략을 논의했던 2020년 9월 “미국과 남조선군부는 해마다 여러 합동군사연습을 통해 그(북침 핵 전쟁 전략)를 적용, 숙달하면서 완성해왔다”며 “이번에 쑥덕공론을 벌려놓은 것도 이것을 더욱 완비하고 실전에 적용할 수 있게 철저히 준비하자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문재인정부 시절 한·미 연합연습은 대폭 축소된 채 진행됐지만 북한은 쑥덕공론을 앞세워 비난전을 벌여왔다. 북한 ‘통일의 메아리’는 2020년 6월 ‘종지부를 찍어야 할 외세와의 공조놀음’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남한이) 외세와 뻔질나게 마주앉아 쑥덕공론을 벌리면서 동족사이의 불신과 대결을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한·미 연합연습과 관련해선 “(문재인정부는) 정세긴장의 근원으로 되는 합동군사연습의 종료에 대해 요란히 떠들었지만 실제로는 간판만 바꾼 미국과의 합동군사연습들을 그대로 강행했다”고 주장했다.
‘쑥덕공론’이라는 표현이 선전매체가 아닌 관영매체에 등장한 적도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4차 KIDD 회의와 전군주요지휘관회의가 열렸던 2018년 8월 ‘시대 흐름에 배치되는 대결의식의 발로’라는 제목의 정세 해설 기사를 통해 “그 누구의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가 취해질 때까지 연합방위태세와 남조선 주둔 미군 병력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데 대해 쑥덕공론을 하였다”고 주장했다. 노동신문은 이어 “대화와 평화, 북남관계 개선의 흐름에 역행하는 군사적 대결소동은 용납될 수 없다”고 위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