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최악의 인권 유린으로 ‘한국판 아우슈비츠’라 불리던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이 35년 만에 국가기관에 의해 규명됐다. 이번 조사를 통해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105명 많은 657명이 형제복지원에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형제복지원 사건이 ‘국가 범죄’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시설 운영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은 물론 인권 침해 사실에 대해서도 묵인했음을 나타내는 다수의 자료가 공개됐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24일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 같은 형제복지원 사건 진실규명 내용을 발표하며 국가가 피해자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피해 복구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지난해 5월 조사 개시를 의결한 뒤 약 1년3개월간 진행된 조사 결과로, 진실규명 신청자 544명 가운데 191명에 한해 조사가 이뤄졌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60년 7월부터 1992년 8월까지 민간 사회복지법인이 부산 남구 일대에서 운영한 형제복지원에서 대규모 인권 침해가 벌어진 사건이다. 경찰 등 공권력이 부랑인으로 지목한 불특정 민간인을 적법 절차 없이 수용해 강제노역과 가혹 행위, 성폭력 등을 자행했다. 1987년 1월 세상에 사건이 알려졌지만,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은 횡령 등 일부 혐의만 유죄가 인정돼 징역 2년6개월의 처벌에 그쳤다.
이번 조사를 통해 진실화해위는 형제복지원 사망자 수가 657명이라고 확인했다. 기존에 알려진 552명보다 105명이 많은 숫자다. 위원회는 최초로 확보한 사망자 통계와 사망자 명단 등 14건을 종합적으로 검토, 대조해 추가 사망자를 찾았다.
형제복지원 수용자들의 사망률이 당시 일반 인구보다 최대 13.5배 높았다는 점도 밝혀졌다. 특히 1986년 기준으로 형제복지원 수용자 중 15세 이하 아동 사망률은 0.976%였는데, 이는 같은 해 일반 아동 사망률 0.056%에 비해 17.4배 높은 수치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의한 응급 후송 중 사망한 경우도 14건 확인됐는데, 사망진단서에는 모두 ‘병사’로 기재됐다. 구타 또는 가혹 행위 등에 의한 사망을 병사로 조작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위원회 측 판단이다.
위원회는 공권력이 형제복지원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했을 뿐 아니라, 정부 기관이 나서 조직적으로 축소·은폐했다고도 지적했다.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노숙자로 보이면 신원을 확인하지 않고 빨랫줄 등으로 묶어 형제복지원으로 보냈다는 당시 경찰의 증언이 나왔다. 강모씨의 경우 친형이 형제복지원에 수용돼 정부와 경찰에 진정서를 보냈지만, 경찰은 아무런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정부 주요 기관이 형제복지원 대책 회의를 했다는 내용의 보안사 문건도 이번 조사를 통해 공개됐다.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2국장 주재로 열린 이 회의에는 당시 청와대 정무 2수석, 내무부 차관, 대검찰청 차장, 경찰 치안본부장, 총리비서실장, 부산시 부시장 등 고위급 정부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들은 박 원장의 형기가 만료될 경우 복귀를 전제로 새 이사진을 구성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위원회는 국가가 형제복지원에 대한 관리 감독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실을 인지하고도 조치하지 않고, 사건을 축소·왜곡해 합당한 법적 처분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국가가 형제복지원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한편 피해 회복과 트라우마 치유 지원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은 “나머지 피해 생존자에 대해서도 연말까지 추가로 진실규명 결정을 하겠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2·3차 진실규명에서는 형제복지원 수용 아동의 해외 입양 문제와 함께 박 원장 등이 불법으로 취득한 재산 환수 문제와 형사처벌 문제도 다루겠다고 예고했다.